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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간이 만든 가장 불행한 장소인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사랑과 기적의 장소로 변화시켜나간 사제!

7월 14일 [승모 승천 대축일 전야 미사]

연인(戀人)들 사이에서 종종 벌어지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그 누군가에게 눈길을 주거나 가까워지는 모습을 볼 때 즉시 분노가 폭발합니다. 눈에 불길이 이글거리기 시작하며 배신감에 치를 떱니다. 그런 상황을 도무지 견디지 못하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따집니다.

그런데 우리의 하느님 역시 질투의 화신이라고 여호수아는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거룩하신 하느님이시며 질투하시는 하느님으로서, 너희의 잘못과 죄악을 용서하지 않으신다. 너희가 주님을 저버리고 낯선 신들을 섬기면,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선을 베푸신 뒤에라도, 돌아서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망시켜 버리실 것이다.”(여호수아기 24장 19~20절)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느님에 대한 반역과 불충실, 그리고 진노와 처벌, 회개와 용서, 그리고 화해와 새 출발이 거듭 반복되는 역사였습니다. 하느님 눈을 가장 이글거리게 만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위는 우상숭배였습니다. 당신과 맺은 계약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이방신들에게 몰려가는 백성들을 바라보는 그분의 눈에서는 그야말로 불꽃이 튀었습니다.

우리의 하느님께서 마치 우리들의 연인처럼 우리 때문에 분노하시고 눈에서 불꽃이 이글거린다는 것, 생각해보니 참으로 감사하고 은혜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엄청난 거리에 떨어져 계시는 분이 아니라 인격적인 하느님, 우리 인간 각자와 연격적인 관계, 연인 관계를 맺고자 하시는 분이라니, 참으로 놀랍고도 기쁩니다.

오늘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하는 것을 못견뎌하십니다. 하느님 당신을 뒤로 하고 점집으로, 무속인에게로, 사주관상 봐주는 집으로, 사이비 종교로 걸어가는 것을 참아내지 못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녀들이 세상의 좋은 것들에 한눈이 팔려 당신께서 2순위, 3순위, 4순위로 밀려나는 것을 크게 슬퍼하십니다. 오늘 우리의 선택에 있어서 최우선권이 어디에 있는지 잘 성찰해봐야겠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하느님의 눈길에 불꽃을 튀기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겠습니다.

오늘 축일을 맞이하시는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는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을 최우선 순위로 선택하신 전형적인 인물입니다. 특히 지금 이 순간 고통당하고 울며 있는 이웃들 안에 계신 하느님을 최우선적으로 선택한 결과가 위대한 사랑의 순교로 이어졌습니다.

콜베 신부님의 일대기를 읽고 묵상하면서 떠오른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그의 순교는 1941년 8월 14일 단 한번에, 혹은 순식간에 또는 엉겁결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제로서, 성모님의 종으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매일 순교를 준비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의 감동적인 죽음은 그가 매일 매일 살아온 삶의 결론이었습니다.

콜베 신부님과 함께 죽음의 수용소 생활을 견뎌낸 생존자들의 증언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그는 폐결핵으로 인해 가장 병약한 수감자중의 한 사람이었음에도 늘 동료들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했답니다.

자신에게 배당된 말라비틀어진 작은 빵 한조각도 허기로 고생하는 젊은 동료들에게 양보해주었습니다. 매일 배당되는 강제노역 가운데 가장 힘든 일을 먼저 선택했답니다.

간수들의 번득이는 경계의 눈초리를 피해가며 동료 수감자들에게 사목자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영적지도와 고해성사를 통해 지옥의 도가니 속에서도 깊은 마음의 평화와 위로를 얻었으며 또한 자살충동을 극복했는지 모릅니다.

그는 인간이 만든 가장 불행한 장소인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사랑과 기적의 장소로 변화시켜나갔습니다. 폭력과 증오심을 기도와 사랑으로 이겨냈습니다. 지하 아사 감방으로 내려간 후에도 그의 영웅적 덕행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죽음의 공포에 부들부들 떠는 동료들 한명 한명에게 종부성사를 베풀었습니다. 동료들은 그의 무릎에 얼굴을 기대고 평온한 얼굴로 하느님 나라로 건너갔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