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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그대의 마음을 영원의 거울 앞에 놓으십시오. 그대의 영원을 영광의 광채 속에 두십시오!

8월 11일[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언젠가 아시시에 들렀을 때의 경건하면서도 아늑한 느낌이 아직도 손에 잡힐 듯 생생합니다. 특히 클라라 성녀와 동료 수도자들이 기거했던 다미아노 성당에 들렀을 때, 그 가난하고 소박한 분위기가 눈에 선합니다.

그 좁디좁은 공간에서, 처참할 정도의 청빈한 생활 가운데서도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는 얼굴로 자매들과 함께 찬미가를 불렀던 그녀였습니다. 가난이라고 다 똑같은 가난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 느꼈습니다. 웬일인지 그녀의 가난은 우리들의 옹색하고 남루한 가난과는 달리 찬란하고 영롱했습니다.

클라라 성녀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한 분 계십니다. 가난과 겸손의 성인이자 제2의 예수 그리스도라 불리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십니다. 그가 지녔던 인간적 성품, 그가 추구했던 가치관, 그가 소유했던 신앙과 삶이 얼마나 매력적이었던지 당대 수많은 청년들이 그와 같은 길을 걷고자 세상을 등졌습니다.

그녀 역시 그들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스승이 주도한 가난을 통한 영적 쇄신 운동에 흠뻑 매료된 그녀 역시 뭇 남성들의 시선을 뒤로 하고 세상을 등졌습니다. 귀족 가정 출신 자녀로서의 풍요와 특권도 더 이상 의미가 없었습니다. 깜짝 놀랄만한 상속 재산도 자발적으로 포기했습니다.

출가 이후 클라라는 프란치스코가 제시한 영적 여정을 단 한 치 오차도 없이 충실히 따랐습니다. 클라라의 영성은 프란치스코의 영성과 동일합니다. 가난과 겸손과 사랑입니다. 그녀가 자주 강조한 것은 그냥 가난이 아니라 겸손과 함께 하는 가난, 그리고 동시에 가난과 함께 하는 겸손이었습니다. 그녀의 생애 안에서 가난과 겸손은 다정하게 손을 잡았습니다. 그녀 안에서 이루어진 철저한 가난과 겸손의 실천은 자연스럽게 그녀를 그리스도의 뜨거운 사랑에로 나아가게 만들었습니다.

클라라의 삶이 스승 프란치스코와 다른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녀는 봉쇄구역 내에서 프란치스코 영성에 따라 관상 수도생활을 해나간 것입니다. 그녀가 평생토록 관상 수녀회 안에서 끊임없이 바라본 것은 프란치스코가 바라본 것과 동일입니다. 곧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동시에 성체 안에 머물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이런 그녀에게 사람들은 ‘복사판 프란치스코’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또는 ‘제2의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의 영혼에서 나온 여인’, ‘프란치스코의 거울’, ‘프란치스코의 여성적 얼굴’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녀 자신도 스스로를 일컬어 ‘복되신 스승 프란치스코의 작은 나무’라고 즐겨 불렀습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클라라는 지극히 겸손했습니다. 다미아노 성당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한 지 3년째 되던 해, 당시 아시시의 교구장이셨던 귀도 주교님께서는 극구 사양하는 그녀를 수녀원장에 임명하였습니다. 그녀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그 직책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수녀원장인 그녀였지만 수녀원의 허드렛일은 당연히 자신의 일이려니 생각하고 언제나 콧노래를 부르며 기쁘게 해나갔습니다. 그녀가 유독 좋아하던 일이 한 가지 있었는데, 동료 수녀들이 식사할 때 ‘서빙’하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밭일을 끝내고 흙 먼지투성이의 발로 들어오는 동료 수녀들의 발을 정성껏 씻어주는 일이었습니다. 발을 다 씻긴 그녀는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재빨리 수녀들의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클라라의 잠자리는 아무것도 깔지 않은 맨바닥이었습니다. 냇가에서 주워온 돌이 베개였습니다. 작디작은 빵 한조각과 물 한잔이 매끼니 식사였습니다. 실내장식이나 난방은 고사하고 아무런 설비도 안 갖춰진 누추한 거처에서 한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가난이 무엇인지, 추위에 떤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고픔이 무엇인지, 피로에 지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실제로, 온 몸과 마음으로 깊이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더할 나위없는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성 보나벤투라는 그녀에 대해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클라라는 프란치스코의 정원에 핀 첫 꽃송이로서 마치 빛나는 별처럼 반짝였으며, 희고도 순수한 봄꽃과도 같이 향기로웠습니다. 그녀는 그리스도 안에 프란치스코의 딸이었으며 가난한 클라라회의 창설자였습니다.”

클라라는 한평생 봉쇄구역 안에서의 관상생활에 전념하였지만, 자신의 삶을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으로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을 다음의 서한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나는 하늘 아래에서 내가 바랐던 아무도 훔쳐갈 수 없는 그 기쁨을 이미 소유하고 있기에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대도 주님 안에서 늘 즐거워하며, 슬픔이나 우울이 그대를 덮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대의 마음을 영원의 거울 앞에 놓으십시오. 그대의 영원을 영광의 광채 속에 두십시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