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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 주변이 어두워질수록 우리는 위로부터의 빛에 우리 마음을 열어야만 합니다!

8월 7일 [연중 제18주간 토요일]

혼돈과 격동의 세월이었던 지난 세기 초반, 파란만장하면서도 숭고하고 위대한 삶을 살다 가신 신비스런 성녀(聖女)가 한분 계시는데, 독일 태생의 유대인으로서 가르멜 수녀회 수도자였던 십자가의 데레사 베네딕타 수녀(1891~1942)입니다. 우리에게는 에디트 슈타인이란 이름이 더 친근합니다.

그녀는 제게 있어 마치 밭에 숨겨진 보물 같습니다. 늦게나마 그녀의 생애와 영성을 접하게 된 것에 대해 마치 횡재한 기분입니다. 이름 뒤에 따라붙는 다양한 수식어들을 통해 그녀가 얼마나 특별하고 대단한 인물인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철학자, 여성운동가, 가르멜회 수녀, 아우슈비츠 사랑의 순교자, 최초의 유대인 출신 성녀, 유럽대륙의 수호성녀. 그녀의 생애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기에 흥미진진하면서도 감동적인 한편의 영화 같습니다. 그녀가 연출한 장엄한 삶의 연극은 총4막으로 구성됩니다.

제1막은 에디트 슈타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까지의 30여년에 걸친 세월입니다. 그녀의 젊은 시절은 지칠 줄 모르는 진리에 대한 추구가 큰 결실을 맺던 날들이었습니다.

특히 그녀는 여성으로서의 당당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철학에 깊이 몰입했으며, 인간됨의 본질을 파악하고 정립하는데 매진했습니다. 진리에 대한 열정과 헌신의 결과 그녀는 당대 뛰어난 여성 철학자이자 지식인으로서 우뚝 서게 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는 무신론에 빠지고 맙니다.

제2막은 우연한 기회에 시작됩니다. 가까운 친구의 죽음 앞에서,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의 자서전을 접하고 나서부터입니다. 성녀의 넘치는 매력과 영성에 흠뻑 빠진 에디트 슈타인은 ‘이것이야 말로 진리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오랜 세월 찾아왔던 참 진리가 가톨릭교회 안에 있음을 발견한 그녀는 곧바로 세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10여 년의 세월 동안 그녀는 가톨릭 신자이자 교사로서 참 진리이신 하느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계속해서 질문을 던집니다.

제3막은 또 다른 10여 년간에 걸친 가르멜 수녀회 수도자로서의 삶입니다. 탁월한 지적능력과 열정을 눈여겨본 주변 사람들은 에디트 슈타인이 학자로서 자신의 영역을 더욱 확장시켜나가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오랜 세월 쌓아올린 빛나는 업적을 홀연히 내려두고 쾰른의 한 가르멜회에 입회하였습니다.

늦깎이 지원자로서 그녀의 초창기 수도생활은 크나큰 자기낮춤과 겸손의 덕을 요구했습니다. 스무 살이나 차이 나는 동기 수녀들과의 괴리감을 극복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야 했습니다. 동시에 오랜 세월 축척해온 학문적 성취도 모두 내려놓아야만 했습니다.

마침내 에디트 슈타인 인생의 절정인 제4막은 나치에 의해 체포된 이후부터 아우슈비츠 수용소 독가스 실에서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마지막 일주일간의 삶입니다. 그녀는 유대인으로서의 신분을 감추고 은신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지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습니다. 친언니와 함께 나치 비밀경찰에 체포된 그녀는 죽음의 수용소로 옮겨져 소리 소문 없이 희생되고 말았습니다.

에디트 슈타인은 죽음의 수용소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동료 인간 존재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나치라는 거대한 악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으며, 철학자이자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양심과 가치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참된 신앙인으로서의 모델이 어떤 것인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신앙의 진리는 공허하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열매 맺는 것임을 저항과 죽음을 통해 선포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녀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모든 고통을 하느님의 섭리로 받아들였습니다. “우리 주변이 어두워질수록 우리는 위로부터의 빛에 우리 마음을 열어야만 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