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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특별한 기적을 청하지 않으시고, 매일 인내와 기도 속에 살아가신 우리의 성모님이십니다!

7월 30일 [연중 제17주간 금요일]

성모님의 동정성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오늘 복음 구절을 즐겨 애용하곤 합니다.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을 방문하신 후 회당으로 들어가셔서 감동적인 설교 말씀을 펼치시자, 듣고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이렇게 외칩니다.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마태오 복음 13장 55~56절)

논리인즉슨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출산하신 후 4명의 형제들,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를 낳으셨고, 적어도 누이들 2명해서 총 7명을 출산하셨다는 황당한 주장입니다.

그들은 뭔가 착각해도 크게 착각한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 당시 유다 문학 안에서 ‘형제’란 용어는 무척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음을 간과한 것입니다. 친형제뿐만 아니라 사촌, 육촌, 팔촌까지 형제라는 용어 안에 포함시키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저희 수도자들 사이에서도 유사한 전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저희는 서로를 향해 형제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 복음을 바라본다면 충분이 이해가 가시리라 생각합니다.

성모신심, 특별히 성모님 발현에 대해서 깊이 연구한 적이 있습니다. 성모신심은 마치 깨지기 쉬운 보물 단지, 혹은 날카로운 양날의 검 같아서 신중 또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더군요.

다른 무엇에 앞서 성모 신심은 철저하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둔 성모 신심이어야 마땅합니다. 혹시라도 과도한 성모 신심으로 인해 모든 그리스도 신심의 원천이자 기초이신 예수님을 향한 신앙에 누가 된다면, 그 신심은 100퍼센트 그릇된 신심입니다.

오랜 교회 역사 안에서 성모 신심은 부침을 거듭했습니다. 과도하게 남용될 때, 대혼란이 야기되었고, 수많은 여린 신앙인들이 고초를 겪었습니다. 성모 신심과 관련해 그릇된 지도자들로 인해 많은 신앙인들이 이단으로 빠지고 단죄를 받았습니다.

우리 가톨릭교회 교도권은 성모님 관련 사적 계시 앞에서 놀라울 정도로 냉정하고 차분합니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신비로운 현상 앞에서 절대로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을 두고 기도 안에서 이성적으로 접근합니다.

뿐만 아니라 보편 교회는 비록 공식적으로 공인된 성모 성지, 예를 들면 루르드나 파티마 성지라 할지라도 꼭 거기 가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가도 좋지만 굳이 막대한 돈과 시간을 투자해 순례하지 않아도 절대 야단치지 않습니다.

유명 성모 성지 순례를 가서 큰 은총과 축복을 체험하는 것도 좋지만, 매일의 삶 속에서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모범으로 남겨주신 위대한 신앙, 한결같은 겸손과 순명, 불굴의 인내와 극진한 이웃 사랑을 각자 삶의 자리에서 실천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찰라의 기적보다는 일상의 기적을 더 높이 평가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한국 가톨릭교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각 교구 주교님들께서 참여 즉시 자동 파문이라며, 그리도 강하게 당부하고 계시건만, 아직도 어떤 신자들은 보란 듯이 그곳을 드나들고 있습니다.

드나들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애꿎은 주변 사람들, 특히 성직자·수도자들에까지 접근해서 미끼를 던지고 있습니다. 대체 거기 가셔서 무엇을 보고자 하십니까? 거기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그토록 자랑하는 ‘황금향유’입니까? 입에 담기도 민망스러운‘성모님의 참젖’입니까? 유치찬란의 끝판왕인 ‘율신액’입니까? 끝도 없이 계속되는 치유와 기적입니까?

이런 어색한 신심은 성모님께서 가장 꺼려하시는 요소입니다. 이런 그릇된 신심을 추종하고 동조하는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보신다면 크게 진노하시리라 확신합니다.

우리의 성모님은 하느님의 어머니요 하늘의 여왕이시지만, 다른 한편으로 세상 따뜻하고 편안하신 자상한 어머니 같은 분이십니다. 구세주 하느님의 어머니가 됨으로 인해 겪으셔야 했던 그 숱한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특별한 기적을 청하지 않으시고, 매일 인내와 기도 속에 살아가신 우리의 성모님이십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