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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부활하신 주님, 당신과 함께 하는 제 인생은 언제나 따스한 봄날이랍니다!

7월 29일[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공생활 기간 동안 예수님과 제자들에게도 그런 무한 리필 에너지 충전소 같은 집이 있었으니, 베타니아에 위치한 절친 라자로의 집이었습니다. 베타니아는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약 15스타디온(약 2.8킬로미터) 떨어진 곳, 올리브 산 동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오르내리실 때 마다 자주 라자로의 집에 들르셔서 숙식을 해결하곤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종종 벌어진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과의 껄끄럽고 날선 대화로 끝내신 예수님께서는 지친 몸을 이끌고 베타니아로 내려오셔서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그런 날 밤에는 라자로, 마르타, 마리아와 마주 앉아 밤늦도록 포도주잔도 기울이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베타니아에 큰 일이 벌어졌습니다. 라자로가 중병에 걸려 생사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마르타와 마리아는 급히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치유를 청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이 특별합니다. 절친이 위중하다는데, 만사 제쳐놓고 달려오시지 않고 늑장을 부리십니다.

머무시던 곳에 이틀간이나 더 계신 다음에야 라자로의 집으로 향하셨습니다. 이윽고 예수님 일행이 라자로의 집에 도착해보니, 라자로는 이미 운명했고, 무덤에 묻힌 지 이미 나흘이나 지나 있었습니다.

유다인들의 전통에 따르면 고인을 매장한 후에도 일주일간 장례식이 계속되었습니다. 많은 조문객들이 오빠를 여읜 마리아와 마르타를 위로하러 와 있었습니다. 성격 급한 마르타는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큰 유감을 표현합니다. 그녀의 말에는 꽤나 날이 서 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요한복음 11장 21절)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런 간청을 덧붙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이윽고 예수님께서는 장엄하게 선포하십니다.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라자로의 무덤 앞에 서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외치십니다. “돌을 치워라!” 죽은 라자로에게도 외치십니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잠시 후에 경천동지할 일이 발생했습니다. 라자로가 무덤에서 걸어 나오는데, 그 광경이 너무나 으스스했습니다. 다들 혼비백산해서 뒷걸음질 쳤습니다.

소생한 라자로는 염습한 그대로, 수의를 뒤집어 쓴 채, 뒤뚱뒤뚱 무덤 밖으로 걸어 나온 것입니다. 라자로의 소생 사화는 죽음조차 지배하시는 전지전능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돋보이는 복음입니다. 그분은 죽었던 사람도 일으키시는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썩어가는 시신을 일으켜 세우시는 재창조의 주님이십니다.

일반적으로 무덤은 웃어서는 안 되는 통곡과 눈물의 장소입니다.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절망의 장소입니다. 현재와 미래는 없고 고인과의 추억에 기반을 둔 과거의 장소입니다. 그러나 오늘 라자로의 무덤은 어떻습니까? 더 이상 슬픔과 탄식이 없는 기쁨과 환희의 장소입니다.

이제 우리는 라자로의 무덤에서 예수님의 빈 무덤에로 시선을 돌려야 할 순간입니다. 예수님의 빈 무덤은 라자로의 무덤과는 비교가 아예 안 되는 영광과 승리의 장소입니다. 라자로는 소생했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빈 무덤은 죽을 운명을 타고 난 우리 인간에게도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주는 은총의 장소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더불어 낡은 세상이 사라지고 새로운 시대가 활짝 열린 봄날이 시작되었습니다. 불신과 의혹의 무덤에 누워있던 우리도 이제 그만 훌훌 털고 무덤 밖 환한 세상으로 걸어 나와야겠습니다. 오랜 방황과 깊은 상처와 수치스런 죄의 무덤에서 일어나 화사한 봄날, 부활의 삶으로 건너와야겠습니다.

“부활하신 주님, 당신과 함께 하는 제 인생은 언제나 따스한 봄날이랍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