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칼럼

죽었다 깨어나도 용서 못할 사람을 용서하는 기적, 바로 오늘 우리가 행할 기적입니다!

7월 25일[연중 제17주일]

엘리야 예언자의 제자이자 후계자인 엘리사 예언자는 기적의 예언자로 유명했습니다. 구약 성경에 기록된 기적들만 14번인데, 기록되지 않은 기적들도 숱하게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가 행한 기적들은 예수님께서 행한 기적들과 자주 겹칩니다. 요르단 강물 위를 걸어서 건넌 기적, 죽은 여인의 아들을 살린 기적, 나병환자를 치유한 기적, 그리고 오늘 첫 번째 독서에서 소개된 바와 같이 보리 빵 스무 개와 햇곡식 이삭 한 자루로 백 명이나 되는 사람을 배불리 먹인 기적 등입니다.

기적하면 빼놓은 수 없는 인물이 바오로 사도입니다. 그는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 낙마하고 눈이 멀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삶이 180도 바뀌게 되는데, 이는 기적의 첫 시작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회개한 그에게 엄청난 능력을 선물하십니다. 그의 살갗에 닿았던 수건이나 앞치마를 병자들이 터치만 해도 질병이 사라지고 악령들이 물러갔습니다. 삼층 창문에 걸터앉아 있다가 추락사한 청년 에우티코스를 소생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더 큰 기적을 행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기적입니다. 그는 옥에 갇힌 상태에서도 힘차게 주님 사랑의 복음을 선포합니다. 내일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암담한 상황에서도 기쁘고 환한 얼굴로 초대교회 신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이것보다 더 큰 기적이 다시 또 있을까 싶습니다.

“형제 여러분, 주님 안에서 수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에페소서 4장 1~3절)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그분께서 기적을 행하시기 직전 안드레아 사도는 무척이나 회의적이었고 지극히 인간적이었습니다.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요한복음 6장 9절)

안드레아 사도는 아직도 예수님의 신원, 그분이 지니신 권능에 대한 신앙이나 확신이 부족했습니다. 그는 아직도 예수님을 예언자 중에 한 분이나 탁월한 랍비 중에 한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인류 공동체 전체, 세상 만물의 주인이 예수님이란 진리를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실 기적은 예수님 시대와 사도 시대 기적으로 충분하고 흘러넘칩니다. 이제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더 이상 죽었던 사람이 되 살아나고 죽어가던 사람이 순식간에 정상화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대신 또 다른 기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적은 또 다른 누군가가 행할 기적이 아니라, 오늘날 예수님의 또 다른 제자들이자 사도들인 우리 각자가 행할 기적입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용서 못할 사람을 용서하는 기적, 바로 오늘 우리가 행할 기적입니다. 회복 불가능한 중병에 걸려 하루하루 삶과 죽음 사이로 난 길을 걸어가면서도 환하게 미소 지을 수 있는 기적, 바로 오늘 우리가 행할 기적입니다. 내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억울한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초 긍정 마인드로 살아가는 기적, 바로 오늘 우리가 행할 기적입니다.

오늘 교회는 어르신들과 조부모님들을 각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간 소홀했던 연로하신 부모님들의 영육의 건강을 위해 열심히 더 열심히 기도해야겠습니다.

과거와는 달리 노인에 대한 배려나 존경이 눈에 띄게 약화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시대를 한탄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이럴수록 더 큰 그릇, 더 큰 거목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거나 기댈 생각 아예 접고, 더 당당하고 더 힘차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노년의 삶도 멋지고 찬란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온 몸과 마음으로 세상과 이웃들 앞에 보여줘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