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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은혜롭게도 주님께서 찾아와주시고, 손 내밀어주셨습니다!

7월 22일[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시골 살다보니 참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읍에 볼일이 있어 나가는 길에 크게 내걸린 현수막을 보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자제분의 성공이 모든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으셨던가 봅니다. ‘경축! ○○○옹 장남 ○○○ 박사학위 취득’, ‘○○○ 선생 차남 ○○○ 서기관 진급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요즘은 그런 케이스가 드물지만, 과거 경제 개발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인생 역전을 이룬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 청운의 꿈을 품고 가난한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향했지요.

그야말로 주경야독(晝耕夜讀), 형설지공(螢雪之功)의 노력 끝에 큰 성공을 이룬 사람들, 이른바 인생 대박 난 사람들은 가난하고 척박한 고향의 자랑꺼리요 자부심이었습니다. 성공한 자녀들이 한번 씩 고향을 방문하면 부모님들은 너무 기뻐 덩실덩실 춤을 추셨고, 마을 잔치도 열곤 했습니다.

따지고 보니 오늘 축일을 맞이하시는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 역시 엄청난 인생의 대반전, 인생 초대박을 일궈낸 분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기 전 마리아의 인생은 더 이상 손 써볼 수 없는 인생, 더 이상 밑으로 내려갈 수 없는 가장 밑바닥 인생이었습니다.

마리아를 소개할 때 마다 단골로 사용되는 수식어가 있습니다. ‘한때 일곱 마귀가 들렸던 여인’이란 표현입니다. 유다 문학 안에서 7, 12 등의 숫자는 ‘완전한’ ‘꽉 찬’이란 의미입니다.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도 있지만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도 있습니다.

일곱 마귀가 들린 마리아란 표현을 통해서 그녀가 앓고 있던 병고가 얼마나 심각했던지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적당히 마귀가 들린 것이 아니라 완전 마귀가 들렸던 것입니다.

하루에 한 두 시간 마귀에 횡포에 시달리다가 나머지 시간은 잠잠해지는 그런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일곱 마귀가 번갈아가며 난리를 치니 그녀의 하루 온종일은 그야말로 전쟁터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죽음보다 못한 삶,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빨리 죽는 게 더 낫겠다.’는 심정으로 마리아는 혹독한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마리아였는데, 은혜롭게도 인생 역전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꿈에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발버둥 치다가 죽겠구나, 했었는데, 기적처럼 그분께서 다가오셨습니다.

한없는 자비와 연민의 시선을 지니신 분께서 능력과 사랑으로 가득 찬 당신의 손길을 마리아에게 펼치셨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꽁꽁 얼어붙었던 겨울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세상 화사하고 따뜻한 인생의 봄날이 마리아에게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새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된 마리아였기에, 이제 더 이상 여한이 없었습니다. 세상 좋은 것들에 대한 미련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주님뿐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 시간, 재산, 능력, 마음, 영혼, 결국 자신의 삶 전체를 바쳐 예수님을 추종하고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에게 있어 유일한 관심사는 예수님뿐이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런 마리아의 인생 역전이 제 삶의 여정 안에 똑같이 반복되었음이 확실합니다. 참으로 부끄럽고 비참한 제 인생이었는데, 너무나 삶이 혹독해서 다 때려치우고 포기하고 싶었는데, 은혜롭게도 주님께서 찾아와주시고, 손 내밀어주셨습니다. 일으켜 세워주시고 힘내라고 등을 두드려주셨습니다.

이런 우리가 주님 앞에 취할 행동을 다른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죽음의 길에서 되살려 주신 주님의 크신 은총에 깊이 감사하고 행복해하면서, 비록 작고 미약하지만 그분의 크신 은혜와 사랑에 보답하는 삶을 계획해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