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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 역시 제도나 규정의 틀에 사로잡혀 이웃을 단죄하거나 고통으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7월 16일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내면이 텅 빈 사람들, 자기 성찰이나 영성이 결핍된 사람들이 보이는 한 가지 특징이 있으니, 가장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에 대한 식별력의 부족입니다. 가장 핵심적인 것과 부차적인 것의 혼돈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지닌 특기가 있는데, 상대방을 얕보기, 꼬투리 잡기, 하대하고 무시하기, 잘난 체 하기 등입니다.

오늘 안식일 규정을 들이대며 예수님을 공격하는 바리사이들이 가장 대표적인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머릿속은 정말이지 별것 아닌 규칙, 지나가는 개도 웃을 안식일 규정으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눈에 불을 켜고 누가 안식일 규정을 어기는가?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안식일 규정을 어기는 것이 눈에 띄면 가차 없이 비판하고 칼날을 들이댔습니다.

예수님 시대 유다 사회 안에 ‘바리사이’라는 특별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리사이’라는 말은 ‘분리되다’라는 의미를 지녔습니다. 그들은 죄인들이나 나환우들이나 그릇된 신앙인들과는 분리되고 차별화된 정통 신앙인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원래 바리사이들은 모세오경만을 유일무이한 계시라고 강조하는 사제들에 반대하던 평신도 개혁자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모세오경뿐만 아니라 예언서들과 시편 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모든 삶을 통해 하느님께 영광과 제사를 드리려했습니다.

이토록 좋은 의도와는 달리 그들의 신앙생활은 점점 복잡해지고 부담스럽게 되었습니다. 철저하고 빈틈없는 신앙생활을 추구하던 그들이었기에 613개나 되는 율법 조항에 대한 준수뿐만 아니라 구전을 통해 내려오던 실천사항까지 세밀하게 지키려고 애를 썼습니다.

하느님 사랑에 대한 순수한 응답으로 시작되었던 그들의 신앙행위는 점점 반드시 해치워야만 하는 의무사항이자 무거운 짐, 족쇄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자연히 그들의 신앙은 정신보다 제사행위 자체에 치중하게 되었습니다. 내면보다는 겉치레에 더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유달리 강조한 것 규정 가운데 정말 웃기는 규정들이 있었는데, 정결 예식이요, 안식일 규정이었습니다. 외출했다가 귀가했을 때 물이 떨어져서 손이나 발을 못 씻을 수도 있고 씻을 수도 있는데, 씻지 않으면 완전 중죄인 취급을 했습니다.

안식일만 되면 누가 규정을 어기나 눈에 불을 켜고 서로를 바라봤습니다. 안식일에는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어도 요리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제자들이 너무 배가 고파서 밀 이삭 몇 가닥 뜯어먹는 것조차 용납을 못하고 태클을 걸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시선이 무서워서 누군가 죽어가도 안식일에는 치료행위조차 함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종교의 힘을 통한 영적 학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일종의 종교 중독으로 인한 이상행동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꽤 뚫고 계시던 예수님, 부자연스럽고, 비인간적인 삶의 방식,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행동 양식을 죽어도 참아내지 못하셨던 예수님이셨습니다. 바리사이들이 눈에 불을 켜고 바라보고 있는 중인데도 불구하고 법 같지도 않은 법, ‘웃기는 짬뽕’같은 안식일 규정을 사정없이 짓뭉개십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마태오 복음 12장 7~8절)

보란 듯이 안식일 규정을 산산조각내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묵상하면서 오늘 우리 발밑을 내려다봅니다. 우리 역시 제도나 규정의 틀에 사로잡혀 이웃을 단죄하거나 고통으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뒷전이고 일이나 구조에 함몰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