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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 안에 주님께서 자리하시고, 그분의 영으로 가득 찰 때, 우리는 아름답습니다!

7월 10일[연중 제14주간 토요일]

시골 살다보니 참 재미있는 일이 많이 생깁니다. 며칠 전부터 삐쩍 마른 개가 수도원 주변을 서성거렸습니다. 배가 딱 붙어버린 것이 보아하니 일주일은 굶은 것 같았습니다. 정말 불쌍해보였습니다. 순해 빠져서 아무에게나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알아보니 연로하신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키우시던 개인데, 얼마 전 목줄을 끊고 달아나 애타게 찾고 계신답니다. 고기 몇 점으로 유인해서 트럭 옆자리에 태웠습니다.

슬쩍 옆을 쳐다보니 정말 재미있는 녀석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엄청 긴장했던지 엄청 발버둥을 치고 난리더니, 조금 달리니, 여유롭게 서서 바깥 풍경을 만끽했습니다.

마침내 그리던 집에 도착했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아까 수도원에서의 불쌍하고 비참한 모습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자기 집이라고 행동이 아주 자신만만했습니다.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확인하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타나시자, 세상 행복한 얼굴이었습니다.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에도 환한 웃음꽃이 피어났습니다.

주인집을 떠난 강아지와 주인과 함께 있는 강아지는 천지 차이였습니다. 마찬가지겠지요. 주님과 늘 함께 있는 우리는 언제나 행복합니다. 그러나 주님과 멀어져버린 우리는 비참한 존재일 뿐입니다.

인간이란 존재,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때로 한없는 나락으로 떨어져, 더할 나위 없이 비참한 존재로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마냥 그렇게 살지는 않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어제의 나를 훌훌 털고, 화사하고 찬란한 얼굴로 변모합니다. 아름답고 위대한 존재로 탈바꿈합니다.

이렇게 우리 안에는 극단적 선과 악이 공존합니다. 때로 천사의 얼굴을 하고 살아가지만, 순식간에 사탄의 얼굴로 돌변합니다.

언젠가 정말 오랜만에 성당 장식을 하면서 등경을 제작했습니다. 나무 조각으로 먼저 틀을 만들고, 바깥을 한지로 감쌌습니다. 십자가도 그려넣었습니다.

미술 실력이 없어서 인지 참으로 볼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해가 저물고 나서 그 볼품없는 등경들 속에 초를 한 자루씩 넣고 불을 밝히니, 세상에 작품도 그런 작품이 없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 안에 나만 가득할 때, 세속적인 욕심과 이기심, 자만심으로 가득할 때, 우리는 정말이지 볼품이 하나도 없습니다. 초라하고 누추함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주님께서 자리하시고, 그분의 영으로 가득 찰 때, 우리는 아름답습니다. 존재 자체로 찬란하고 영롱합니다. 그때 우리는 인간 본연의 비참과 어둠을 딛고 위대함으로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한없이 부족하고 나약하며 언제나 죄인인 우리들이지만, 주님으로 인해 존귀해지고 가치를 지닙니다. 투박한 질그릇 같은 우리들이지만, 보잘 것 없는 우리들의 그릇 안에 주님의 영을 가득 담게 될 때, 우리는 더없이 사랑스런 존재로 변모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