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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자료 , 평생양성자료

그녀는 종종 돈 보스코처럼 “우리는 천국에서 쉴 거예요”라고 말하곤 하였다.

복녀 마리아 로메로 메네세스(기념일: 77)

마리아 로메로 메네세스 수녀는 1902년, 중앙아메리카 중부에 있는 니카라과의 북서부 도시 그라나다에서 출생했다. 로메로 친가와 메네세스 외가는 스페인 혈통이며 19세기부터 니카라과 공화국 역사의 과정을 누빈 명문 높은 계보를 자랑하고 있다. 마리아의 아버지는 훌륭한 그리스도교 신자이자 선량한 시민으로 명성 있는 여러 직위를 거쳐 장관직에까지 오른 사람이었다.

로메로의 유년 시절은 행복했다. 종려나무 그늘로 덮인 호화로운 저택에는 아무것도 부족한 게 없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사랑과 할머니의 자상함과 일곱 명이나 되는 고모들의 교육을 만끽하며 자랐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의 삶에 가장 소중한 재화는 깊은 그리스도교적 교육이었다. 그녀는 여덟 살에 첫영성체를 했고 오래지 않아 내면화한 영적 풍요로움을 나누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도시의 호숫가에 있는 가족 별장에 갈 때면 농장과 이웃의 어린이들을 모아 경쾌한 노래를 부르거나 달구지를 타고 오솔길을 달리면서 함께 즐겼다. 놀이 끝에는 반드시 그들에게 기도나 종교적인 단순한 생각을 심어 주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수업은 음악에 대한 그녀의 탁월한 소질을 드러내 주었으며 미술 공부는 당대의 유복한 여인들이 향유하는 예술적 소양을 보완해 주었다. 이로써 그녀는 젊은이들을 위한 미래 사도직 활동에 유익한 기반을 닦았다.

돈 보스코의 선교사들인 살레시오 수녀들은 1910년에 그녀의 땅에 진출했다. 선교사들은 무척 가난하였지만 선량하며 언제나 밝은 모습이었다. 마리아 로메로는 기숙사에서 이 선교 수녀들과 살면서, 자기가 가진 모든 세속적 풍요로움을 버리고, 어디든지 불고 싶은 대로 부는 ‘바람’이 되고픈 열정의 불이 당겨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마리아 로메로는 1923년 산살바도르에서 살레시오 수녀로서 서원을 발하게 되었다. 마침내는 선교사가 되어, 코스타리카에서 두 손 가득히 씨를 뿌리면서 놀라운 사업을 펼쳐 나갔다. 그녀의 거대한 비전과 청소년에 대한 헌신적인 열정이 모두를 감동시켰다.

그녀에게는 마치 불가능을 가능으로 변화시키는 에너지와 끈기를 분출시키는 어떤 비결이 있었다. 이 모든 비결은 오로지 기도의 힘에서 비롯됨을 자신의 고백에서 엿 볼 수 있다.

그녀는 종종 돈 보스코처럼 “우리는 천국에서 쉴 거예요”라고 말하곤 하였다. “나에게 영혼만을 달라!”는 사랑의 열정으로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소모하고 핍진된 상태로 살다가 마침내 파치피코 해변으로 만성적인 피로를 치료하러 갔다가, 1977년 7월 7일에 그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녀는 세상을 떠나기 바로 전에 “나는 모든 물방울 속에서 하느님을 본다. 바다 앞에서 죽는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라고 탄성을 발했는데, 그녀의 소원대로 바다 앞에서 하느님 품 안에 안기게 되었다. 그녀를 무척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성녀’라 불렀고, 또한 ‘성녀’로 기억하고 있다. 2002년 4월 14일, 시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