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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요셉은 시련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고통 안에 반드시 하느님의 뜻이 있었음을 확신합니다!

7월 7일 [연중 제 14주간 수요일]

우리는 요즘 첫째 독서인 창세기를 통해 성경 안에서 가장 재미있고 아름다운 장면으로 손꼽히는 요셉의 인생 역전 스토리를 전해 듣습니다. 봉독하고 묵상할 때 마다 감동 또 감동입니다.

아버지 야곱의 총애를 받는 요셉을 시기 질투한 형제들이 의기투합해서 요셉을 죽이기로 결정합니다. 천신만고 끝에 목숨을 건진 요셉은 이집트로 팔려가 노예생활을 합니다.

요셉의 형들은 한 인간 존재로서, 그리고 혈육으로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비록 요셉이 죽지는 않았지만, 그들 마음 안에는 분명한 살의(殺意)가 있었습니다.

“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구나. 자, 이제 저 녀석을 죽여서 아무 구덩이에나 던져 넣고, 사나운 짐승이 잡아먹었다고 이야기하자. 그리고 저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창세기 37장 20절)

그리고 형들은 또 다른 대죄를 지었습니다. 요셉을 미디안 상인에게 은전 스무 닢을 받고 팔아놓고서는, 아버지 야곱에게는 그가 산짐승에게 공격을 당해 찢겨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야곱은 옷을 찢고 허리에 자루 옷을 두른 뒤 오랫동안 슬퍼했습니다. 그 어떤 위로도 소용이 없었으며, 남은 세월을 눈물로 지냈습니다. 형들은 더 이상 악할 수 없는 불효를 저지른 것입니다.

제가 요셉이었더라면? 하는 묵상을 해봅니다. 아무리 내가 철딱서니 없고 버릇이 없는 동생이라 할지라도, 형들의 만행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한 아버지에게서 나온 혈육으로서, 없애버릴 결심을 할 수 있었는지?

짐승만도 못한 형들을 향한 미움과 분노로 복수의 칼날을 갈았을 것입니다. 언젠가 반드시 내가 받은 수모를 똑같이 되갚아 줄 것이라는 생각을 되풀이했을 것입니다.

아마 요셉도 그런 비슷한 마음으로 이집트에서의 혹독한 생활을 악착같이 견뎌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크신 도움과 불굴의 노력으로 요셉은 놀랍게도 대제국 이집트의 넘버 투 자리에 올라서게 됩니다.

이윽고 이집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비롯한 근동 지방에 대기근이 발생합니다. 요셉의 기지로 이집트는 7년간 대풍년 기간에 잘 저장해놓은 곡식을 백성과 이웃나라에 팔수 있었습니다.

요셉의 형들도 곡식을 구하러 이집트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이집트의 통치자가 된 요셉 앞에 형들이 다가와 얼굴을 땅에 대고 절을 했습니다. 저 같았으면, 그 순간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을 것입니다.

“형들, 그때 대체 왜 그랬어요? 형들 때문에 내가 평생 타국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요? 형들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그러나 요셉은 꾹 눌러 참습니다. 지나간 시절의 고통과 슬픔에 지나치게 연연하지 않습니다. 시련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고통 안에 반드시 하느님의 뜻이 있었음을 확신합니다. 부족한 형들을 관대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너그럽게 형들을 용서합니다.

“내가 형님들의 아우 요셉입니다.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넘긴 그 아우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저를 이곳으로 팔아넘겼다고 해서 괴로워하지도, 자신에게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 우리 목숨을 살리려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창세기 44장 4~5절)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갚은 요셉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요셉의 심성이요 신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요셉을 큰 축복과 은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