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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혼자만 멀찌감치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걷고, 같이 먹고, 더불어 살아가는 ‘함께 영성’(Sinodality)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6월 15일 [연중 제 11주간 화요일]

초대교회 시절은 성령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인해 은총 충만한 순간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자신들의 두 눈으로 메시아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직제자들의 감동적인 증언을 들을 수 있었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혹독한 박해 앞에서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고 당당했습니다. 가난과 추위, 배고픔과 역경 속에서도 늘 기뻐했습니다. 성령께서 함께 동행하지 않으셨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시대와 초기 교회 시대는 기적으로 충만했던 순간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직제자들과 그분의 부활 목격 증인들은 마치 스승님처럼 놀라운 기적을 행했습니다. 말씀 한 마디로 불치병 환자를 치유시켰으며, 이미 목숨이 끊이진 사람들까지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기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거듭되는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극심한 가난을 겪으면서도 자신들보다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가진 바를 아낌없이 나누었습니다. 이러한 초기 교회 교우들의 모습이 첫번째 독서에 잘 소개되고 있습니다.

“환난의 큰 시련 속에서도 그들은 기쁨으로 충만하여, 극심한 가난을 겪으면서도 아주 후한 인심을 베풀었습니다.”(2코린토 8장 2절)

이토록 놀라운 기적의 원동력이자 배경은 스승이자 길잡이이신 예수님이었고, 그분이 공생활 기간 내내 취하셨더 고유한 노선이었습니다. 그 노선은 다름 아닌 하향성(下向性)의 노선, 아래로의 영성, 육화강생의 노선, 자기 낮춤의 길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1코린토 8장 9절)

오늘 우리나라를 바라보니 참으로 대단한 나라, 대단한 민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한 급격한 경제성장를 초단기간에 이뤄냈습니다. 불과 5~60년전만 해도 너나할 것 없이 쫄쫄 굶고 다니던 최빈국이었는데, 이제 G7에 가장 근접한 나라로 성장했습니다.

참 좋은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압축 경제 성장 이면의 어두운 그늘,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천박한 자본주의, 물질만능주의, 경제지상주의로 인해 차별받는 이웃들, 소외되는 이웃들, 죽어가는 이웃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초대교회 신자들이 목숨걸고 추구했던 공유 의식이 절실히 필요한 순간입니다. 너와 나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높은 벽을 허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혼자만 멀찌감치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걷고, 같이 먹고, 더불어 살아가는 ‘함께 영성’이 요구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과거 우리 민족의 전통 문화의 많이 닮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식사 시간때 누군가가 갑자기 찾아와도 아무렇지도 않은듯 환대했습니다. 자리를 좁혀 그를 식탁에 앉게 하고, 초스피드로 수저를 놓아주며 그를 끼워주었습니다.

식사 시간에 맞춰 깡통과 대문을 두드리는 걸인들을 위해 어머니들은 넉넉히 밥을 준비했습니다. 극심한 가난을 겪으면서도 아주 후한 인심을 베푼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간절한 목소리로 부르짖고 계시는 시노달리니(sinodality) 운동, 즉 ‘함께 걷기’ 운동이 점점 더 큰 메아리가 되어 전 세계에 울려퍼졌으면 좋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