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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늘도 저는 상처입은 치유자이자 부족한 사목자로서, 가슴을 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6월 11일[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

예수 성심 대축일이자 사제 성화의 날을 맞아 한없이 부족하고 부끄러운 사제로 살아오면서 만났던 소중한 인연들을 돌아봅니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깊은 연민과 측은지심이 들게 하던 꽃잎같던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유난히 혹독한 십자가와 깊은 상처로 힘겹게 살아가던 형제자매들의 모습도 기억이 납니다. 좀 더 따뜻하고 살갑게 대해주지 못한 것, 좀 더 격려하고 좀 더 위로해주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면 인생 자체가 고역이요 슬픔인 사람들을 만납니다. 하루하루 힘겹게 견뎌내는 그들을 바라보면, 한없이 부족한 저지만, 제 마음 역시 깊은 슬픔과 연민의 정으로 가득합니다. 그의 슬픔이 내 슬픔이 되는 ‘상황전이’ 현상으로 제 마음도 괴롭습니다.

한낱 인간의 마음도 이럴진데 하느님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오랜 세월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하느님의 마음은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명명백백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분의 마음은 과연 어떤 마음일까요? 그분의 마음은 한 인간 존재의 고통과 슬픔을 못견뎌 하는 마음입니다. 그분의 마음은 그저 우리가 잘 되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분의 마음은 우리의 죄와 방황과 타락 앞에 탄식하고 눈물 흘리시는 마음입니다.

이런 측은지심과 연민의 하느님,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우리를 끔찍이 여기시는 하느님, 우리를 향한 불타는 사랑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사랑의 하느님께 깊이 감사하는 하루를 보내야겠습니다. 그 큰 사랑에 작은 보답이라도 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착한 목자이신 주님 앞에, 그리고 양떼들 앞에 그저 송구스럽기만 한 예수 성심 대축일이자 사제성화의 날입니다. 얼마나 걱정되었으면 따로 ‘사제 성화의 날’까지 제정했을까? 하는 마음에 크게 부끄럽기도 합니다.

오늘 한국 가톨릭 교회의 현실을 진단할 때, 지금 수많은 도전과 기로 앞에 서 있는 우리 교회가 쇄신되고 성장하는가? 아니면 퇴보와 쇠락의 길을 걷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70퍼센트의 답은 사제들에게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희 사제들이 참 목자이신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언제나 자신의 양떼를 위해 기도하고 일하며, 노심초사하고 결국 목숨까지 바치는 노력을 통해, 우리 교회가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드라마틱한 나날이 매일 펼쳐지는 세상 안에서 고생하며 살아가시는 평신도들, 그리고 나와 너무나 다른 그, 그리고 공동체와 더불어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수도자들의 삶도 힘겹지만, 사제들의 삶도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강론대 위에서의 모습과 강론대 밑 내 모습 사이의 큰 괴리감에 늘 괴로워합니다. 사제들 역시 한없이 나약하고 부족한 인간인지라, 때로 작은 파도 앞에서도 무기력하게 쓰러질 때가 있습니다.

마음 속에는 언제나 주님과 교우들로부터 사랑받는 멋진 사제로 살고 싶은 마음 가득하지만, 막상 구체적인 현실 앞에 서면 예의바르고 균형잡힌 사제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본인도 이해하기 힘든 부끄러운 모습으로 전락합니다.

언제나 내 안에는 또 다른 내가 있습니다. 그 나를 통제하고 다스려가며 살아가기가 얼마나 버거운지 모릅니다. 사제 역시 교회 안에 다른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한 가엾는 죄인이요 상처투성이의 어린이지만, 그 상처를 꼭 부여안고, 오늘도 상처입은 치유자이자 부족한 사목자로서, 가슴을 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 성심께서 당신의 한없이 너그럽고 뜨거운 사랑으로 매일 사제들을 따뜻히 품어 안아주시고,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기쁘게 살아갈 힘을 주시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