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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자료 , 평생양성자료

그는 2013년 10월 19일 부다페스트에서 시복되었다.

살레시오 수사로 순교의 월계관을 쓴 복자 스테펜 산도르 기념일(68)

스테펜 산도르 수사는 1914년 10월 26일 헝가리 솔노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살레시오 수도생활에 매료된 그는 부다페스트 변두리에 있는 클라리세움이라는 살레시오 학교에 입학했다. 클라리세움은 청소년을 위한 오라토리오와 인쇄소 및 직업학교를 운영하였다. 그는 1928년 6월 직업학교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14세의 소년 스테펜은 직장을 알아보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영적 지도신부에게 클라리세움에서 만난 살레시오 회원과 작업장의 분위기에 관해 꾸준히 이야기하였다. 영적 생활에 관한 이러한 일관된 관심이 ‘하느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하는 물음에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그를 이끌었다. 그는 <살레시오가족지>를 비롯한 다양한 살레시오 출판물을 읽으며, 살레시오 성소로 부르고 계신 하느님의 음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1932년에 살레시오회에 입회를 신청했지만 부모의 반대로 입회할 수 없었다. 그러나 3년의 기다림 끝에 입회한 그는 1940년 살레시오 수사로 첫 서원을 했다. 바로 이 시기에 돈 보스코를 주보로 하는 ‘가톨릭노동청년회’가 태어났다. 스테펜은 이 조직의 주창자요 핵심 인물이었다. 청소년들에게 인쇄 기술을 가르치면서 교육적인 열성을 드러냈고, 여러 청소년 단체들을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이끌었다.

1946년 종신서원을 한 직후 고국이 공산치하에 들어갔지만, 그는 자신이 담당하고 있던 청소년들을 지속적으로 돕기 위해 피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은밀하게 교육 활동을 펼쳤다.

1952년 박해의 시대가 시작되자 바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청소년에 대한 사랑을 영웅적인 신앙으로 완성하며 1953년 6월 8일 작은 칫솔 하나, 빗 하나, 수건 한 장을 남긴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는 지옥과도 같았던 그 교도소에서도 본당 사제인 조제프 사보 신부와 함께 손가락으로 묵주기도를 바치며 수감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빛과 희망을 안겨 주었고, 고해성사를 하도록 많은 동료 수감자들을 사보 신부 앞으로 초대했다. 심한 허기 속에서도 자기 음식을 남에게 나누어 주던 그의 모습은 생존자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졌다.

스테펜 사도르 수사의 순교는 청소년을 위한 심원한 사랑과 단순한 사랑이 빚은 열매이다. 그는 성 요한 보스코의 “나는 나의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청소년들에게 나의 삶을 바칠 것입니다.”라는 말씀을 온전히 실천해 순교의 월계관을 쓴 것이다.

2013년 10월 19일 부다페스트에서 시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