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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늘 우리가 사랑하는 성전은 어떠한지 진지하게 성찰해봐야겠습니다!

5월 28일[연중 제8주간 금요일]

유다 지도층 인사들의 수뇌부가 예수님을 체포하기로 마음먹은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으니, 예루살렘 성전 정화 작업이었습니다.

말이 성전 정화 작업이지, 한 마디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완전히 한판 뒤집어 놓으셨습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장사꾼들을 채찍질하며 쫓아내셨습니다.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의 의자도 둘러엎으셨습니다.

그리고는 하시는 말씀.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마르코 복음 11장 17절)

예수님의 거룩한 분노 앞에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즉시 대책 회의를 개최한 후 그분을 없애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우리나라로 치면 한국 가톨릭의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는 명동 성당과 비슷했습니다. 각 교구의 주교좌 성당 역할도 했습니다. 그만큼 유다인들의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는 대단했습니다.

나라가 멸망해서 초토화되고, 굴욕적인 로마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도, 유다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생각하며 힘과 용기를 냈습니다. 유다인들에게 있어 예루살렘 성전은 심장이요 영혼, 자랑이요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성전의 화려함은 더해갔지만, 규모는 점점 더 확장되어 갔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알맹이는 사라져 갔습니다. 성전의 봉사자들은 고생하는 백성들을 위로하기는커녕, 이런저런 명목으로 헌금을 강요하며 백성들의 등골을 빼먹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마당을 요란한 장터 같았습니다. 속죄 죄물로 바칠 동물 판매인, 환전상, 소매업자, 도매업자, 흥정꾼, 야바위꾼으로 넘쳐났습니다. 성전은 약삭빠른 사람들의 좋은 먹잇감이 된 것입니다. 유다 지도층 인사들은 성전 마당에서의 거래를 허락해주는 댓가로 두둑한 뒷돈을 챙겼습니다.

이렇게 속화되고 타락한 예루살렘 성전을 보신 예수님께서 초강경 모드로 성전을 정화하신 것입니다.

어디 가나 주님과 교회를, 성모님과 성인성녀들을 신앙의 대상, 존경과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뱃속을 채우는 도구로 활용하는 이리떼들이 있습니다.

늘 유심히 바라보고 식별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어떤 강의를 들으러 갔었는데, 틈만 나면 외치는 것이 치유요 기적이라면 일단 의심해봐야 합니다.

어떤 신심 모임에 초대받아 갔었는데, 상습적으로 고가의 물건을 강매한다든지, 은근히 고액의 헌금을 강요한다면 빨리 빠져나오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신다면 불같이 진노하시며 정화하실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랑하는 성전은 어떠한지 진지하게 성찰해봐야겠습니다. 혹시라도 그 옛날 예수님께서 보시고 진노하신 시장터같은 교회는 아닌지요? 성전이 지녀야 할 거룩함과 충만한 사랑, 개방성과 친교의 정신은 온데 간데 없고 장사꾼들만 판을 치는 교회는 아닌지요?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