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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의 하느님,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도저히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5월 26일 [성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

16세기 가톨릭교회는 안팎으로 다양한 도전에 시달리며 크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비하신 하느님께서는 고통당하는 교회와 당신 양떼를 결코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고통과 시련도 허락하시지만, 이겨낼 힘과 위로도 아끼지 않으시는 하느님께서는 탁월한 성인성녀들을 선물로 보내주셨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필립보 네리(1515~1595) 성인입니다.이탈리아 중부 아름다운 문화와 예술의 도시 피렌체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필립보 네리는 음악과 시와 예술과 사람을 무척이나 사랑했습니다. 그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낙천적인 성격에다 경제적으로도 탄탄했으니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필립보 네리는 로마 여행을 하던 중 순교자들의 무덤 카타콤바를 순례하게 되는데, 거기서 받은 감동이 컸던 것 같습니다. 지하 무덤에서 그는 하느님 사랑에 대한 신비로운 황홀경을 체험하게 됩니다. 당시 체험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이런 고백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나의 하느님,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도저히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흘러넘치는 충만한 하느님 사랑을 온몸으로 체험한 필립보 네리는 그 사랑을 이웃들에게 빨리 전해주고 싶은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혔습니다. 즉시 중환자들을 방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중노동에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을 찾아갔습니다.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가련한 사람들에게 다가섰습니다.

세상 친절하고 다정다감할뿐더러 유머 감각이 흘러넘치는 필립보 네리의 모습에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다들 감동을 받았습니다. 감동을 받은 것 뿐만 아니라 필립보 네리 안에 현존해 계시는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그와의 만남을 통해 하느님께로 돌아섰습니다.

편안하면서도 영성적인 필립보 네리의 모습에 반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사제의 길을 추천했습니다. 결국 주변 사람들의 거듭되는 요청에 따라 1551년 서른 여섯 살의 나이에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순풍에 돛을 단 필립보 네리 사제는 열정적인 사목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하루 12~15 시간 동안 고백성사를 집전했습니다. 필립보 네리의 다정다감한 모습은 중죄인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순식간에 녹게 만들었습니다. 크게 회심한 사람들을 모아 ‘오라토리오’라는 영적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필립보 네리 신부님이 보여준 사목자로서의 가장 특징적인 모습은 넘치는 인간적 매력과 탁월한 유머감각이었습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흠모했습니다. 다들 조금이라도 그와 함께 있고 싶어 안달이었습니다.

그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수많은 명사들이 찾아왔는데, 대표적인 인물 몇만 꼽으라면 이렇습니다. 이냐시오의 로욜라 성인, 가롤로 보로메오 성인,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

노동자든 추기경이든, 가난한 사람들이든 부자이든, 노인이든 청소년이든 모든 사람들이 그를 좋아했습니다. 특히 필립보 네리는 광장이나 길거리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청소년들과 아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필립보 네리 신부님은 청소년들이 마음껏 젊음을 발산할 수 있는 장소나 기회를 조성했습니다. 청소년들이 모이면 간단한 교리 공부를 시작했고 이어서 그들이 좋아하는 놀이 시간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언제나 버릇없고 개념없는 길거리 청소년들 사이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는데, 예의도 갖추지 않는 청소년들의 행동 앞에 화가난 어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했습니다.

“청소년들이 원하는 대로 하게 놓아 두십시오. 그들이 죄만 짓지 않는다면 그들이 나를 몽둥이로 때린다 해도 저는 괜찮습니다.”

언제나 겸손하고 온유했으며, 늘 친절하고 다정다감했고, 그 어떤 사람도 거절하지 않고 환대했던 기쁨의 사제 필립보 네리 신부님의 모습 앞에 참으로 큰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