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칼럼

일치를 중요시해야 합니다. 일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5월 20일 [부활 제7주간 목요일]

하느님께서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하고 계시는 분인지? 오늘 예수님 작별기도, 혹은 대사제의 기도를 통해 명확하게 알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다른 무엇에 앞서 우리 각자 한명 한명을 위해 기도하시는 분입니다.

그냥 기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고, 두손을 우리 머리 위해 펼치고 간절히 기도하십니다.

기도의 주된 내용은 우리 각자의 행복과 구원입니다. 성삼위께서 온전히 하나이신 것처럼, 우리 모두도 아버지 안에 하나되기를 간청하고 계십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요한 복음 17장 19~21절)

언제나 분열과 반목, 분쟁과 혼란이 끊이지 않는 지구촌입니다. 극단적 자국 이기주의가 판을 칩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사상과 이념의 극한 대립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한 지붕 아래 살아가는 가족들조차도 일치와는 요원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기도 주제는 자연스레 일치인 것입니다.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일치와 통합의 모델이 성삼위를 바라봐야겠습니다. 하나되기가 힘겨울 때 마다 성삼위께 도움을 청해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상하게도 당신의 직제자들만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으십니다. 제자들의 제자들, 제자들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는 새로운 그리스도인들, 결국 오늘 우리들까지 포함해서 기도하십니다.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직제자들뿐만이 아니라 직제자의 제자들, 그 제자들의 또 다른 제자들의 증언을 듣고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은 세상이 존속하는 한 계속 생겨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을 향해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은 결코 끊이지 않고 세세대대로 탄생할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이웃 전교는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지 모릅니다. 따라서 누군가를 예수님께로 인도한다는 것,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한 복음사가께서 예수님의 입을 통해 그토록 자주 일치를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도 일치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특히 본토 유다인들과 그리스계 유다인들 사이의 갈등의 골은 엄청 깊었습니다. 보수적인 유다인들과 진보적인 유다인들 사이의 대립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런 갈등이 몇몇 바오로 서간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 분쟁이 일어났다는 것을 클로에 집안 사람들이 나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여러분이 저마다 ‘나는 바오로 편이다.’, ‘나는 아폴로 편이다.’, ‘나는 케파 편이다.’, ‘나는 그리스도 편이다.’ 하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갈라지셨다는 말입니까?”(1 코린토 1장 11~12절)

초기 교회 공동체의 분열에 사도들은 어떻게 대응했는지 살펴보는 일도 중요합니다. 기회 닿을 때 마다 주님 안의 일치, 성령 안의 일치를 강조했습니다.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에페소서 3장 3~5절)

“일치를 중요시해야 합니다. 일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안티오키오의 성 이냐시오 주교)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