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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네 인생 여정, 엄청 긴 것 같지만, 사실 찰라요 순간입니다!

5월 19일[부활 제7주간 수요일]

바오로 사도께서 정말이지 대단한 분이시라는 것을 요즘 새삼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렇게 열심히 복음 선포에 매진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동료들의 생계를 위해, 신자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직접 일을 하셨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나는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낸 일이 없습니다. 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을 이 두 손으로 장만하였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모든 면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사도행전 20장 33~35절)

바오로 사도께서 스스로 밝히신 바처럼, 그는 틈만 나면 천막 짜는 일을 하면서 자신과 동료들의 의식주를 책임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언제나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고 거칠 것 없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저 역시 요즘 바오로 사도 비슷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복음 선포를 위해서도 노력하지만, 눈 뜰때 부터 눈 붙일 때 까지, 하루 온종일 청소부로, 세탁부로, 잡부로 관리인으로 이리 저리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하루 온종일 잠시도 앉아 있을 틈도 없이 뛰어 다니다보니, 몸은 고달프지만 좋은 점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저녁먹고 나면 벌써 슬슬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자리에 눕자마자 몇분도 지나지 않아 초스피드로 깊은 잠에 빠져듭니다. 그렇게 빠지지 않던 뱃살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습니다.

더 좋은 일이 있습니다. 아마도 육체 노동이 주는 은총인가 봅니다. 내 손으로 뭔가 이웃과 세상을 위해 작은 기여지만 하고 있다는 생각에, 무척 보람되고 마음이 뿌뜻해집니다. 하루 온종일 사무실 컴퓨터 앞에서, CEO로 일하던 시절에는 꿈도 꾸지 못할 일입니다.

아마 바오로 사도 역시 그러셨을 것입니다. 복음 선포도 열정적으로 하셨지만, 그에 못지 않게 자신과 동료들의 하루 삼시 세끼 해결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소홀히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동료 인간들이 세상 안에서 겪는 우여곡절과 구체적인 삶에 더욱 공감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사도행전 말씀은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 교회 교우들에게 남기는 고별사인데, 분위기가 꽤나 숙연합니다. 무척이나 감동적입니다.

이제 달릴 곳을 다 달린 바오로 사도였습니다. 앞으로 자신에게 남아있는 것은 스승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그대로 걷는 것 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분위기가 숙연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흐느껴 울면서 바오로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다시는 자기 얼굴을 볼 수 없으리라고 한 바오로의 말에 마음이 매우 아팠던 것이다. 그들은 바오로를 배 안까지 배웅하였다.”(사도행전 20장 36~38절)

우리네 인생 여정, 엄청 긴 것 같지만, 사실 찰라요 순간입니다. 매번의 만남들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그 어떤 만남, 그 어떤 사람과의 만남이라 할지라도 오늘의 만남을 내 생애 마지막 만남으로 여기고 정성과 사랑을 다해 만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이번 만남이 내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마지막 만남으로 생각하고, 정성껏 상대를 위해 기도하고, 최대한의 품위와 예의를 갖추도록 노력해봐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