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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다마스쿠스 사건 이후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운명이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5월 18일[부활 제7주간 화요일]

오늘 바오로 사도께서는 예수님을 구세주요 하느님으로 고백하는 사람들, 그 결과 복음을 이웃들에게 전하는 사람들, 결국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아주 비장한 어조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용하신 문장 하나 하나, 단어 하나 하나가 얼마나 감동적이고 비장한지, 2천년 세월을 건너와 오늘 우리의 마음까지 크게 흔들어 놓습니다.

복음선포의 최일선에 서 있어야 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굳은 결의도 없이 흐지부지하게 살아가는 오늘 제게 큰 경종의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나는 유다인들의 음모로 여러 시련을 겪고 눈물을 흘리며 아주 겸손히 주님을 섬겼습니다. 이제 나는 성령께 사로잡혀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나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나는 모릅니다. 다만 투옥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성령께서 내가 가는 고을에서마다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달릴 길을 다 달려 주 예수님께 받은 직무, 곧 하느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 마칠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이 아깝지 않습니다.”(사도행전 20장 19절, 22~24절)

이제 시대가 바뀌고 바뀌어 더 이상 사도들의 시대처럼 모진 박해도 생명의 위협도 없습니다. 투옥이나 환난도 없습니다. 시련이나 눈물도 없습니다. 참으로 복음 선포하기 좋은 환경입니다.

그러나 이런 좋은 분위기 속에 살아가면서도 복음선포를 위해 전력질주하지 않는 우리를 보시는 바오로 사도의 마음이 참으로 안타깝겠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혹시라도 복음 때문에 시련을 겪은 적이 있습니까? 복음 정신 때문에 눈물 흘려본 적은요? 예수님 때문에 박해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다가 투옥된 적이 있습니까? 복음 선포를 위해 목숨까지 바쳐본적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동족 유다인들의 음모와 집요한 공격으로 바오로 사도는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항상 겸손했습니다. 언제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임을 자처했습니다. 기쁨 속에 모든 고통을 견뎌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던 예수님의 모습과 예루살렘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바오로 사도의 모습은 싱크로율 100퍼센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바오로 사도도 성령에 이끌려 천천히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다마스쿠스 이후 한 가지 깊고 중요한 깨달음에 도달했습니다. 자신의 운명이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이제 자신의 운명 뿐만 아니라 일거수일투족을 이끄시는 분은 주님의 성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처럼 바오로 사도 역시 복음 때문에, 아버지 때문에, 하늘 나라 때문에 자신이 앞으로 걸어야 할 고통과 십자가의 길을 잘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운명, 자신의 미래, 자신의 삶과 죽음 모두를 주님의 성령께 맡겨드리고, 의연하고 당당하게 예루살렘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바오로 사도의 모습이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