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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바오로 사도를 보십시오. 실패 앞에서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부끄러워하거나 탄식하지 않았습니다!

5월 12일 [부활 제6주간 수요일]

바오로 사도의 제2차 전도 여행 때의 일이었습니다. AD 51년경 바오로 사도는 당시 로마 지배를 받고 있던 그리스 아테네를 방문합니다. 실라스와 함께 애제자 티모테오를 기다리고 있던 중, 아테네 이곳 저곳을 돌아보게 되는데, 도시 전역에 걸쳐 만연되어있던 우상 숭배에 크게 격분합니다.

한번은 바오로 사도가 당시 나름 잘 나간다던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 철학자들과 논쟁이 붙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바오로 사도의 발언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뭐라고 뭐라고 하는데, 자신들의 논점과는 전혀 다른 바오로 사도의 설교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던 철학자들은 자기들끼리 수군거렸습니다. “이 떠벌이가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인가?”

그들은 바오로 사도를 아레오파고스로 데리고 가서 다른 철학자들 앞에서 연설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아레오파고스는 아레스의 언덕이란 의미입니다. 115미터 정도 되는 나즈막한 언덕 위에 위치해 있습니다. 고대 아테네 귀족 정치의 중심지이자 법정이 위치하고 있던 장소였습니다.

아레오파고스는 시대의 변화 앞에 부침을 거듭했지만, 나름 막강한 권한과 힘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의도적 살인에 대해 재판하는 법적 권한도 지녔습니다.

너무 어마무시한 자리였던지 바오로 사도의 연설은 청중들에게 제대로 먹히지 않았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연설 서두에 아테네 시민들에 대한 예우랄까 배려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대단한 종교심을 가지고 있습니다.”(사도행전 17장 22절)

사실 연설 내용도 신선하고 감동적이며 멋진 것이었습니다.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하느님은 하늘과 땅의 주님으로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는 살지 않으십니다.”(사도행전 17장 24절)

“사실 그분께서는 우리 각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사도행전 17장 27~28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을 귀가 없었던 청중들, 새로운 포도주요, 새로운 가치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 믿음과 관심도 없었던 청중들이었기에,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버렸습니다.

바오로 사도 설교의 주제가 부활에로 넘어가자 마침내 청중들은 대놓고 비웃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도저히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던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점에 관해서는 다음에 다시 듣겠소.”

바오로 사도의 설교는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중간에서 흐지부지 끝나게 되었습니다. 성령으로 가득찼던 명 설교가 바오로 사도의 연설도 때때로 먹혀들지 않았다는 것, 오늘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복음 선포라는 것, 결코 쉽지 않습니다. 특별히 마음이 굳게 닫혀있는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 노골적으로 적개심을 가진 사람들 앞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오로 사도를 보십시오. 실패 앞에서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부끄러워하거나 탄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서 가슴치며, 좀 더 많이 기도하고, 좀 더 잘 준비할 것을 다짐하면서, 또 다시 다른 지방으로 복음을 선포하러 길을 떠났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