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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느님 부재(不在)는 곧 의미의 부재요, 기쁨의 부재, 참 행복의 부재입니다!

5월 3일[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오늘같이 쾌청하고 적당히 바람까지 불어주는 날은 만사 제쳐놓고 하는 일이 있습니다. 침구 빨래입니다. 쨍쨍한 햇볕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산더미처럼 쌓인 이불과 담요를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또 돌립니다.

빨래줄에 널으며 멀리 바다를 바라보니, 잔잔한 수면 위로 유조선들이 왔다갔다 합니다. 유심히 보면 꼭 다니는 길로만 다닙니다. 바다에도 길이 있는 것입니다. 바다뿐만 아니라 하늘에도 길이 있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히 한 인간이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길도 있습니다.

요한 복음서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종종 당신의 신원, 정체성에 대해 소개하시면서, “나는 ~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나는 살아있는 빵이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문이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나는 부활이며 생명이다.” “나는 참 포도나무이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소개하십니다.

그런데 당신 자신에 대한 예수님의 은유적인 가르침은 꽤나 알쏭달쏭하면서도 긴가민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밀착 수행하며 동고동락했던 사도들조차도 예수님 신원에 대한 가르침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는데, 오늘 우리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말씀을 묵상해봅니다.

길: 예수님의 육화강생으로 인해 이제 예수님 존재 자체가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길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라도 하느님께 나아가고자 한다면, 반드시 예수님을 통해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그리고 오늘 우리들이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길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되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머무시는 동안 당신의 삶 전체를 통해 하느님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느님께로 다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 덕분에 우리 인간은 너무나도 쉽게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진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진리는 우리 인간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통상적인 개념과는 맥을 완전히 달리 합니다. 학문적 진리로 이해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진리는 하느님을 가장 절대적이고 우선적인 가치로 인정하고, 온전히 그분을 믿는 것입니다. 동시에 하느님의 말씀과 약속, 그분의 충실함을 신뢰하고 의탁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을 통해서 은혜롭게도 하느님의 진리와 인간이 상봉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예수님에게서 은총과 진리를 받았습니다. 인간은 예수님을 알고 그분의 메시지를 알게 됨으로써 하느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해줄 것이며, 갖은 속박과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줄 것입니다.

생명: 우리 인간은 생명 유지를 위한 필수 조건인 의식주만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보다 충만한 삶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열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학문이나 예술 등 문화적 가치들을 향유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런데 신앙 안에서 인간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갑니다. 의식주를 넘어, 문화 예술, 학문 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오직 하느님과의 긴밀한 통교를 통해서 충족되며 완성될 수 있습니다.

한 인간의 삶에서 하느님이 부재하실 때, 그 삶은 결코 충만한 삶, 완전한 삶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 부재는 곧 의미의 부재요, 기쁨의 부재, 참 행복의 부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참된 삶은 예수님을 통한 하느님과의 친밀한 통교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