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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저 아이들에게는 저밖에 없습니다!

4월 25일 [부활 제4주일]

성소주일을 맞아 제 지난 봉헌생활을 돌아봅니다. 사부이신 돈보스코와 청소년들을 향한 열정으로 활활 불타올랐던 사제서품 후보자 시절, 서품 성구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 라는 질문 앞에 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성경 말씀에서 뽑았는데, 저는 청소년들을 향한 사랑이 가득 담긴 돈보스코의 고백을 뽑았습니다.

“저는 청소년들을 위해 일하고, 청소년들을 위해 공부하며, 청소년들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흐르고 흘러 뒤돌아보니 큰 부끄러움만 한 가득 남습니다. 말과 글로만, 강론대에서만 청소년 청소년 했지, 솔직히 제대로 된 청소년 사목을 하지 못했습니다. 크게 가슴치면서 지금이라도 뭔가 할수 있을까 고민해보지만, 이제는 너무 연세^^가 들어 아이들이 슬금슬금 도망가버립니다.

가끔씩 본격적인 청소년 사목 현장에서 헌신하고 있는 형제들이나 수녀님들이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할때 마다 제가 건네는 단골 멘트가 있습니다. “메뚜기도 한철이랍니다. 나이들면 청소년 사목 하고 싶어도 안시켜줍니다. 솔직히 부럽습니다.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겠지만 지금이 살레시안으로서 제일 행복한 때인 줄 아십시오.”

올초 과분하게도 교구 신부님들 연례피정을 동반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일주일 내내 착한 목자 돈보스코에 대해서 소개해드렸습니다. 돈보스코의 생애, 영성, 그가 겪은 고통, 기도생활, 성모신심…제 개인적으로 강의를 준비하면서 다시 한번 돈보스코에 대해서 깊이 공부하는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돈보스코는 착한 목자의 전형이자 모델이었습니다. 그의 머릿 속은 오직 청소년들의 영혼 구원을 향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외의 것들은 들어올 틈도 시간도 없었습니다.

돈보스코가 토리노 오라토리오를 떠나 로마로 출장을 떠날 때 마다, 그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아이들에 대한 걱정, 사랑, 연민의 정으로 가득했습니다. 로마에서 보낸 돈보스코의 편지 안에 그런 마음들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청소년 여러분, 저는 멀리서나 가까이서나 언제나 여러분을 생각합니다. 제게 있어 단 한 가지 소원은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나 행복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여러분과 떨어져 지내는 것이 제게 얼마나 큰 섭섭함이요 괴로움인지 여러분은 짐작하지 못할 것입니다.”

성소 주일을 맞아 우리 모든 사목자들의 마음 속에도 돈보스코가 지녔던 양떼를 향한 애틋한 마음, 열렬한 사랑의 불이 다시금 활활 타올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든 사목자들의 마음 안에 어떻게 하면 양들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어떤 감동적인 강론과 구체적인 삶의 모범으로 양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선사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성소주일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목자들이 그렇게 노력할 때, 양들은 참으로 행복해할 것입니다. 세파에 지쳐 쓰러져 울다가도 우리 사목자들을 떠올리며 존재 자체로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의 얼굴을 떠올리며 포기하지 않고 희망하게 될 것입니다.

돈보스코가 젊은 사제 시절이었습니다. 돈보스코는 당시 토리노 교구 내 큰 손이었던 바롤로 후작부인이 운영하는 소녀 기숙사 지도신부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토리노 뒷골목 노동 현장에서 착취당하는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꽤나 파격적인 연봉을 받으면서 사목하던 돈보스코였지만, 바롤로 후작부인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본업에 충실해주면 좋겠는데, 즉 기숙사 소녀들에게만 전념해주면 좋겠는데, 돈보스코는 틈만 나면 토리노 뒷골목을 샅샅이 훑고 다녔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없으면 어느새 소년 교도소에 가있었습니다.

어느날 화가 잔뜩 난 바롤로 후작 부인이 담판을 짓기 위해 돈보스코를 호출했습니다.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나입니까? 아니면 저 뒷골목 아이들입니까?”

제가 돈보스코 같았으면, ‘죄송합니다. 후작 부인! 제가 요즘 좀 지나쳤죠? 앞으로 기숙사 소녀들에게 더 많은 신경을 쓰겠습니다.’ 그랬을텐데, 돈보스코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후작 부인꼐서는 돈이 많은 분이니 얼마든지 좋은 사제를 고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 아이들에게는 저 밖에 없습니다. 저는 저 아이들을 선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 아이들에게는 저 밖에 없습니다.”라는 표현이 오늘 제 가슴을 크게 칩니다. 오늘 우리 모든 사목자들도 이런 고백을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 가난한 양들에게는 저 밖에 없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