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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느님 말씀의 선포와 기도야말로 사도들에게 주어진 가장 본질적인 임무입니다!

4월 17일 [부활 제2주간 토요일]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수려한 금강산의 풍경도 쫄쫄 굶은 상태로 바라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도 크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피정오신 분들을 동반할 때 자주 체험합니다. 음식이 아주 중요하더군요. 일단 맛갈진 음식으로 배를 잘 채우고 나면, 그 뒤는 만사 오케이입니다. 여정이 순조롭습니다.

사람들이 크게 상처입고 소외감 느끼는 이유는 의외로 사소한 것에서 출발합니다. 특히 먹는 것에서 차별대우 당한다고 느낄때 받게되는 상처는 만만치 않습니다.

언젠가 한 축하연에 갔었는데, 일반석, 특별석이 따로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차려진 음식들도 현격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특별석에 앉아있는데 바늘방석에 앉은 듯한 기분에다, 부담스런 마음에 음식이 제대로 넘어가지도 않았습니다. 주최측 담당자에게 조용히 말씀드렸습니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요즘 첫번째 독서로 낭독되고 있는 사도행전에서는 천국을 앞당겨 살았던 공동체, 세상 모든 공동체들의 모델인 초대교회 공동체의 생활상이 소상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오늘 저자는 아주 흥미로운 풍경 하나를 전해줍니다.

이상적인 공동체였던 초대교회 공동체 역시 완벽하지만은 않았다는 내용입니다. 그 발단은 바로 음식에서의 차별대우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구절을 접할 때 마다 속으로 웃습니다. 초대교회도 별것 아니었구나,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었구나, 하는 생각에.

“그 무렵 제자들이 점점 늘어나자,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히브리계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리게 되었다. 그들의 과부들이 매일 배급을 받을 때에 홀대를 받았기 때문이다.”(사도행전 6장 1~7절)

당시 예루살렘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외적으로 크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적인 어려움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당시 공동체 안에는 본토 유다인들, 즉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히브리계 유다인들과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본토 유다인들의 텃세가 좀 있었겠지요. 더구나 두 유다인들 사이에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보니 생기는 오해도 있었을 것입니다. 두 부류 사이에 은근 알력도 발생했을 것입니다. 하필 그런 순간 그리스계 과부 배급 차별 사건이 발생합니다. 화가 잔뜩 난 그리스계 신자들이 사도들을 찾아와 강력한 항의를 했습니다.

그 순간 사도들이 보여준 태도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계 신자들의 민원을 일단 접수합니다. 사도들이 모여 비상대책회의를 열었겠지요. 사안의 심각성을 파악한 그들은 즉각적으로 해결책을 마련했습니다. 사도들은 사람들을 모두 불러놓고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십시오. 그들에게 이 직무를 맡기고,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

억울함을 토로한 그리스계 그리스도 신자들의 민원 앞에 사도들이 미적거리지 않고 초스피드하게 대응한 것이 눈에 띕니다. 사도들의 제안 앞에 온 공동체가 기쁘게 동의했습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이 직면한 어려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도자로서 자신들의 한계와 약점을 잘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사도들은 과부나 환자들 같은 약자들을 돌보는 자선행위를 개별적으로 관리감독해왔습니다.

사도들은 보다 본질적인 직무에 헌신해야겠다고 결심하며, 식탁 봉사나 배급, 자선 행위를 일곱 부제들에게 일임합니다. 하느님 말씀의 선포와 기도야말로 사도들에게 주어진 가장 본질적인 임무라는 것을 알게된 것입니다.

사도들은 식량배급이나 식탁봉사가 차원 낮은 일이라고 여긴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주님 보시기에 보다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각자에게 주어진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내게 부여하신 가장 근본적인 사명, 1차적이고 중요한 과제는 무엇인지 생각해봅니다. 그런 사람 참 많습니다. 뭔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만, 반드시 해야될 일은 죽어도 하지 않습니다.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만 골라하고 있습니다. 그 둘을 잘 식별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해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