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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느님을 가장 기쁘게 해드리는 것은 변화된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2월 28일 [사순 제2주일]ㅔ

타볼산 위에서 이루어진 주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을 묵상하다가, 언젠가 동료 신부님들과 한잔 하면서 나눈 대화가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그날 주제는 ‘원판불변의 법칙’이었습니다.

인간은 웬만해서는 변화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계획, 인간의 의지적인 노력만으로 회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한 계기나 사건이 필요하답니다.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은총과 자비가 필수랍니다.

예를 들면 바오로 사도처럼 말에서 제대로 한번 떨어진다거나, 벼락을 한번 맞는다거나, 예기치 않았던 큰 사고를 당해 거의 요르단 강을 건너갔다가 다시 돌아왔다거나…그렇지 않고 한 인간의 자의적인 노력만으로 회개는 힘들다는 데 다들 공감했습니다.

원판불변의 법칙, 곰곰히 생각해보니 참으로 지당한 법칙인 것 같습니다. 저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봐도 맞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다짐하고 또 결심하면서 변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지만, 아직도 진정성 있는 변화는 요원합니다.

아직도 오래전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젊은 시절의 미성숙과 불완전과 나약함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스쳐 지나가는 작은 바람 한줄기에도 심하게 요동치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오래고 질긴 악습을 아직도 끼고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저 위에서 오는 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변화와 회개를 갈구하는 간절한 기도만으로 부족한 것 같습니다. 플러스 알파로 하느님 편의 개입과 도움, 은총과 자비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변화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한 다음, 겸손하게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를 구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진정한 회개를 위해 나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고, 하느님의 손길에 완전히 내맡기는 전적인 봉헌이 필요합니다.

변화되지 않고 사는 것이 편합니다. 굳이 애써 회심이나 회개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선물로 주신 단 한번뿐인 인생, 손톱만큼도 변화되지 않고, 전혀 성장하지도 않고, 부끄러운 이 모습 그대로 그분께로 돌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송구스러운 일인 것 같습니다.

작은 변화가 시작되면 하느님의 은총 역시 가속도가 붙기 시작합니다. 회개의 삶이 시작될때 뒤따라오는 하느님의 축복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마치 누에고치가 허물을 벗고 한 마리 어여쁜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는 분위기입니다.

회심 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더 이상 고통이 고통이 아니라 축복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병고 역시 주님을 진정으로 만나는 은총의 장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십자가는 주님의 또 다른 얼굴로 변모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가장 기쁘게 해드리는 것은 변화된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성장하는 모습을 선보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가장 어여삐 받으실 우리의 봉헌입니다.

우리가 보다 긍정적으로 변화되는 것, 이기적인 신앙을 떨치고 보다 이타적인 신앙에로 나아가는 것, 유아기적인 신앙에서 성숙된 신앙에로 성장하는 것, 어둠에서 밝음으로 나아가는 것, 죄에서 해방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가는 것이 우리가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