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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매일 매 순간, 모든 사건과 만남 앞에서 아멘! Yes! Fiat! 이라고 외치는 것, 아주 훌륭한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모습을 발견한 세례자 요한은 감격과 감사로 가득찬 떨리는 목소리로 제자들을 향해 크게 외칩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복음 1장 36절)

세례자 요한의 외침 후에, 두 제자는 스승을 그 자리에 남겨둔 채, 한 마디 작별 인사도 없이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세례자 요한이 던진 증언의 진의(眞意)는 이것이었습니다.

‘자, 이제 그토록 고대하던 때가 되었다. 나와 너희의 관계는 여기까지다. 이제 나를 떠날 때가 왔다. 나를 넘어설 때가 왔다. 나보다 훨씬 더 크신 분, 저분을 따라가거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세례자 요한의 철저한 겸손이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오랜 세월 공들여 교육시킨 제자들이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평생 옆에 두고 스승·제자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습니다. 막상 제자들을 떠나보내려니 허전하고 쓸쓸한 마음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쿨하게 제자들을 떠나가게 도와줍니다.

이토록 놀라은 겸손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요? 그의 겸손은 오랜 세월 광야에서 머무르면서 내공을 닦은 데서 온 겸손입니다. 그의 겸손은 철저한 청빈 생활과, 매일 매 순간 하느님의 뜻을 찾아나가려는 기도의 삶에서 온 겸손입니다.

참으로 추하고 비참한 것이 물러날 때를 모르는 것입니다. 물러날 순간이 왔음을 알게 된 세례자 요한은 센스있고 깔끔하게 물러납니다. 공들여 닦아놓은 지역구도, 열렬한 추종자들도, 자금도, 세력도 다 내려놓고 혈혈단신 홀로 떠나갑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허전하거나 쓸쓸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역할을 100% 완수했다는 데서 오는 충만한 기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살다보면 나 자신을 커지게 함으로 인해 예수님을, 형제들을 작게 만드는 경우가 너무도 많았습니다. 나 자신을 작아지게 함으로 인해 예수님과 형제들을 커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인공이신 예수님, 세상을 구원하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보다 확연히 드러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이 정말 눈물겹습니다.

그분을 위해 자신은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하나의 불쏘시개가 되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더 이상 자기 자신의 영예나 체면, 백성들의 관심과 박수갈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아름다운 한 송이 꽃으로 활짝 피어나도록 한 줌 재로 산화하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이 정녕 감동적입니다.

참된 기도자였던 세례자 요한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참된 기도는 세례자 요한처럼 수시로 주님께 여쭙는 것입니다. 주님, 제가 나아갈 길은 어느 길입니까? 기도 끝에 목적지를 선택했다면 열심히 그 길을 걸어가는 것, 또한 기도입니다.

길을 걸어가다보면 당연이 기력이나 에너지가 소진되겠지요. 그럼 또 다시 주님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에너지를 보충하는 것, 아주 좋은 기도입니다.

목적지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여정 안에서 매일 매 순간, 모든 사건과 사람들, 특히 내게 호의적이지 사건과 사람들과의 만남 앞에서도 아멘! Yes! Fiat! 이라고 외치는 것, 또한 아주 훌륭한 기도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