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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정화하는 예식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물을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1월10일 [주님 세례 축일]

어린 시절 꽤나 궁금했던 부분이 예수님의 세례였습니다.
하느님의 외아들,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 무죄하신 분이신데, 왜 인간인 세례자 요한을 찾아가셔서 세례를 받으시는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세례를 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는 세례의 주관자, 세례의 창시자인 예수님께서 나약한 한 인간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너무나 깨끗하신 분, 그래서 세례가 전혀 필요 없으신 예수님께서 죄인들 사이에 서셔서, 마치 죄인처럼 세례를 받으십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입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마치 한 기업의 CEO가 신입사원 연수를 받는 일입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연대장이 훈련병에게 거수경례하는 일입니다.
환갑을 넘긴 교장이 아직 철도 들지 않은 신입생에게 허리를 굽히는 일입니다.

‘주님 세례 사건’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베들레헴 마구간 탄생 때부터 골고타 산에서의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평생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극단적 자기 낮춤, 한없는 겸손,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철저한 순명의 틀 안에서 주님 세례 사건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외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당연히 무죄하신 분이기에 굳이 요르단 강을 찾아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베푸시고 죄를 사해주셔야 할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자신을 낮추셔서 세례를 받기 위해 줄을 쭉 서있는 사람들 사이에 서셨습니다.
다른 죄인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기 위해 요르단 강을 찾아오신 모습을 확인한 세례자 요한은 얼마나 당황했던지 극구 사양하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구세주 하느님의 참으로 놀라운 겸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는 첫 여정인 마구간 탄생을 통해서 한없는 겸손을 보여주신 예수님께서는 당신 세례성사를 통해 다시 한 번 지극한 겸손을 보여주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한 평생은 초지일관 극단의 겸손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님의 세례에 대해서 교부들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영원하신 아드님께서는 세례를 받아야 할 어떤 필요도 없었지만, 스스로 요한의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정화하는 예식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물을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렇다면 티끌이라고는 한점도 없는 무죄하고 순수한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통해 정화제인 당신의 몸으로 오염된 세상과 인간을 정화시킨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물속으로 들어가심을 통해, 그 물을 정화시키시고, 부패한 우리 인간의 본성을 회복시켜주셨으며, 우리에게 불멸의 옷을 입혀주신 것입니다.

존재 자체로 무죄, 순수, 청량 그 자체였던 예수님이셨기에 요르단 강에 들어가자마자 죄와 부패, 타락과 우상숭배로 물들어있던 이스라엘 전체가
말끔히 정화되는 효과를 입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어디를 가시든지 발길 닿는 곳마다 혼탁한 공기를 청량하게 변화시키셨습니다.
세리와 환전상으로 욕심으로 오염된 이스라엘의 성전을 깨끗이 정화시키시는가 하면 악령으로 더럽혀진 인간의 영혼을 말끔히 치유해주셨습니다.

일관되게 자신을 낮추시며 아버지 뜻에 순종하시는 예수님의 겸손한 모습에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크게 기뻐하십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코 복음 1장 11절)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은 모습을 택하신 지극히 겸손하신 예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려야 할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그분께서 평생토록 일관되게 지니셨던 겸손의 덕을 우리도 청해야겠습니다.

우리 역시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아랫사람들 앞에 용기 있게 고개 숙일 수 있어야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