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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세례자 요한은 언제나 초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부여하신 사명의 핵심을 망각하지 않았습니다!

1월9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하느님의 인류 구원 사업이라는 무대가 차려진 후, 서막(序幕)에서 열연했던 세례자 요한이 무대에서 빠져나가는 순간, 주인공으로 등장하시는 예수님과 스쳐 지나가듯이 살짝 마주치는데, 이른바 ‘세례 원조 논쟁’ 사건을 통해서입니다.

선구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120 퍼센트 완수한 세례자 요한이 무대 밑으로 내려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순간, 예수님께서 등장하셔서 백성들에게 세례를 베풀기 시작하셨습니다.그런 상황 앞에 분기탱천하는 동시에 큰 위기감을 느낀 사람들이 있었는데,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사실 당시 세례! 하면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세례 갱신 운동을 시작한 독보적인 존재, 세례의 특허권자가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이런 세례자 요한을 스승으로 모신 제자들 역시 자부심이 남달랐습니다.

그간 스승 세례자 요한이 보여준 모습은 제자들에게 있어 자부심을 가질만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 전역에서 스승님에게 세례를 받으러 요르단 강을 찾아왔습니다.

평범하고 가난한 백성들뿐만 아니라 유다 고관대작들, 사제들과 지도층 인사들도 모두 찾아와서 스승님 앞에 순한 양처럼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런 모습 앞에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덩달아 어깨가 으쓱해졌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혼란스럽고 당혹스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예수라는 ‘갑툭튀’가 나타나 스승님의 전유물이자 특허인 세례를 베풀기 시작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었는데,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 생겼습니다.

스승 세례자 요한에게 쏠렸던 시선이나 환호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스승님 가게는 파리만 날리고 있는데, 사람들은 모두 저쪽으로 몰려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슬쩍 가서 분위기를 보니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세례와 관련해서는 원조라는 자부심에 어깨 펴고 살던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의 마음은 심하게 불편해진 것입니다. 분노가 폭발한 제자들이 이럴 수는 없다,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 된다는 마음에 스승을 찾아와 다그치듯이 외칩니다.

“스승님, 요르단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요한 복음 3장 26절)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분명 스승님께서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분노하시고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리라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가 담판을 지으리라 희망했습니다. 그런데 스승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전혀 뜻밖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하고 내가 말한 사실에 관하여, 너희 자신이 내 중인이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복음 28절, 30절)

세례자 요한의 겸손한 신원의식이 유난히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인간적인 시각으로 볼때, 세례자 요한이 직면한 현실은 참으로 실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큰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한때 자신이 무대의 주인공이었는데, 한때 세상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갈채를 한 몸에 받았었는데, 이제 그 모든 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물려주고 무대 밑으로 내려서야 한다는 것, 사실 수용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언제나 초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부여하신 사명의 핵심과 본질을 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나서야 할 때, 그리고 물러서야 할 때를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탁월하고도 명철한 식별력의 소유자였는데, 그것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늘 깨어 기도하려고 노력한 세례자 요한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선물이었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