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칼럼

우리는 길이 아니라 이정표,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 주인·왕이 아니라 종, 심부름꾼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1월2일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시건방지기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수탉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다른 수탉들과는 달리 유난히 크고 붉은 닭벼슬과 화려한 색상의 털을 지니고 있었기에 건방을 떨었나 봅니다. 다른 수탉들은 절대로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데, 스스로를 닭 세계의 왕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수탉은 더 큰 착각을 한 가지 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동틀 무렵에 ‘꼬끼오!’하고 외쳐야 태양이 뜨고 새벽이 온다고 여겼습니다. 수탉 자신으로 인해 이 세상이 시작되고, 세상이 돌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우리 역시 그런 수탉의 착각에 빠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내가 없으면 이 공동체가 절대 돌아갈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모두 들러리로 여깁니다. 나로 인해서 이 공동체가 평화롭고, 나로 인해 이 공동체가 유지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외칩니다. “나야 나! 나 말고 누가 있어?” 그러나 실상은 어떠합니까? 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입니까?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이 세상은 어떻게 눈을 뜹니까? 창조주 하느님의 오묘하고 신비스런 섭리와 질서의 손길에 의해 이 세상은 시작됩니다.

태양은 새벽녘에 아주 미세한 여명을 보내시어 깊이 잠들어있는 수탉을 흔들어 깨우십니다. 옅은 빛으로 인해 닭장 안에 잔뜩 깃들이고 있던 짙은 어둠이 조금씩 어두움이 가시는 것을 감지한 수탉은 달라진 분위기에 기지개를 펴며 ‘꼬끼오!’하고 외칩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절대 나로 인해 공동체가 돌아가고, 나로 인해 공동체가 유지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착각 중에서도 너무나 큰 착각입니다. 진실은 어떠합니까?

우리 인간 개개인 각자는 얼마나 비천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 모릅니다. 그 누구든 이 세상에 홀로 설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크신 자비를 베푸셔서 우리를 공동체란 이름 아래 엮어주셨습니다. 각기 한없이 부족하고 보잘 것 없지만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면서 살아가라고 한 울타리 안에 엮어주신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세례자 요한이 우리에게 보여준 자기 스스로에 대한 명확한 신원의식, 자아정체성은 얼마나 큰 교훈으로 다가오는지 모릅니다. 그가 탁월하고 강력한 모습으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등장하자 사람들은 큰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혹시라도 이 사람이 오시기로 되어있는 메시아가 아닐까?’

이런 이유로 유다 지도층 인사들은 몇몇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요?”(요한 복음 1장 19절)
그러자 요한은 서슴지 않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세례자 요한은 탁월한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베풀던 때, 그야말로 잘 나가던 때, 그를 바라보던 세상 사람들의 시선은 대단했습니다. 촌철살인 같은 메시지, 극도로 청빈했던 삶, 강직한 인품, 쌍날칼보다 날카롭던 그의 설교… 그의 삶이 얼마나 매력적이었던지 그를 따르는 사람이 점점 많아져서 한때 ‘세례자 요한 당(黨)’까지 형성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자기 자신에 대한 명료한 신원의식과 명확한 이해가 있었습니다. 자신은 그저 뒤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앞서 보내진 자, 자신은 길이 아니라 이정표,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 주인·왕이 아니라 종, 심부름꾼이라는 사실을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세례자 요한이었기에 때가 이르자, 즉 구세사의 주인공 예수님께서 등장하시자 스스로를 소멸시켜나가기 시작합니다. 공개석상에서 자신을 완전히 낮추며 사람들의 시선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합니다.오랜 세월 공들여 양성시켰던 제자들도 미련 없이 예수님께로 떠나보냅니다. 뿐만 아니라 좀 더 완벽히 소멸되기 위해 헤로데 왕가의 타락을 공개적으로 거듭 질타합니다. 그 결과 순교라는 완벽한 소멸을 맞이합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