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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 해의 끝자락에 서서

12월31일 [성탄 팔일 축제 제7일]

한 해의 끝자락에 서서 지난날들을 되돌아봅니다. 참으로 금쪽같이 소중한 시간이었는데, 어찌 그리도 허송세월하며 보낸 순간들이 많았는지…

하느님 앞에, 벼랑 끝에 내몰린 이웃들 앞에 이렇다하게 내어드린 것도 없는데 또 세월은 어찌 그리도 속절없이 빠르기만 한지…

생각할수록 부끄러운 한해입니다. 생각과 말만 앞섰지 행동이 전혀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정녕 쥐구멍이라고 들어가고 싶은 한해의 마지막 페이지입니다.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못했던, 그래서 하느님 앞에 송구스런 날들이었습니다.

다시 되돌이킬 수만 있다면 컴퓨터 리셋 하듯이 좋지 않은 기억들 싹 밀어 지워버리고 새롭게 시작하고픈 연말입니다.

그러나 좀 더 곰곰이 생각해보니 마냥 힘겹고 서글픈 날만은 아니었습니다. 비록 돌아보면 상처와 허물투성이의 날들, 때로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듯한 날들이었지만 때로 구원자 예수님께서 당신 사랑의 빛을 가끔씩 비춰주셨습니다. 참 빛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으로 인해 그래도 견딜만한 한해였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자꾸만 어둠속으로 파고드는 우리를 지속적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심연의 어둠 속에 앉아있는 우리를 향해 일어나 밖으로 나오라고 외치시고, 때로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손수 손을 잡아 생명의 광장으로 이끌어내셨습니다.

아무리 부끄럽다, 송구스럽다, 한심하다, 자책하지만, 돌아보니 그분의 충만함으로 인해 우리는 은총에 은총을 입었습니다. 은총을 받고 또 받은 은혜로운 한해였습니다.

비록 때 묻고 얼룩진 우리, 상처입고 흠투성이의 우리 날들이었지만 그분의 현존, 그분의 빛으로 인해 우리 삶도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강렬한 광채로 인해 제 삶도 작은 빛이나마 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뜨거운 사랑으로 인해 우리 인생은 매일같이 화사한 봄날로 변화되었습니다.

힘겹다, 외롭다, 죽겠다고 외쳐대지만 곰곰이 돌아보니 참으로 많은 감사꺼리들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언제나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결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다들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찬찬히 헤아려보니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숨어서 선행을 쌓는 이들, 조용히 하늘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각자를 당신 눈동자보다 더 귀히 여겨주시는 사랑의 하느님이 가까이 계십니다. 우리의 감각이 너무 무뎌져 미처 깨닫지 못하지만 언제나 우리의 등 뒤에서 우리를 든든히 떠받치고 계시는 자비하신 하느님이 동행하십니다.

결국 이 한해의 끝자락에 우리가 드릴 기도는 감사의 기도뿐입니다.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요한복음 1장 16절)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