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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투명한 아침 햇살도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부드러운 석양은 더욱 찬란합니다!

12월29일 [성탄 팔일 축제 제5일]

성탄 시기 우리가 봉독하는 복음서 안에는 노인들께서 롤모델로 삼으시면 좋을 인물들이 몇명 등장합니다.
즈카르야와 엘리사벳, 한나, 그리고 시메온입니다.

우리 모두 꿈꿉니다. 고상하고 품위있는 노인, 지혜롭고 영적인 노인!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더 기도해야지, TV를 끄고 책을 손에 들어야지, 포기해야지, 내려놓아야지, 입을 닫고 지갑을 열어야지,
백번 천번 다짐해보지만, 실천으로 옮기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런 면에서 노인 시메온의 삶이 참으로 매력적이었습니다.
시메온은 나이 들어가면서, 육적인 삶을 줄이고 영적인 삶을 조금씩 확장시켜나갔습니다.
마치 오늘날 열심한 어르신 교우들처럼, 매일 같이 성전으로 출근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에 따르면 그는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던”(루카 복음 2장 25절)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시메온은 더 이상 내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찾았습니다.
더 이상 지상의 삶이 아니라 천상의 삶을 추구했습니다.
두발은 비록 이 땅위에 딛고 서 있었지만, 마음은 벌써 천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잘 준비된 영적 노인 시메온에게 마침내 주님께서 풍성한 은총을 선물로 주십니다.
평생토록 염원했던 소원, 지복직관의 은총, 메시아로 오신 아기 예수님을 자신의 두 눈으로 목격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두 팔에 안아보는 영예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쁨이 얼마나 컸던지 시메온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루카 복음 2장 29~32절)

또 다시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또 다시 나이 한살을 더 먹으면서, 또 다시 주님 가까이 한발 더 다가가면서, 고민하고 성찰해봐야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고상하고 품위 있는 노인, 지혜롭고 영적인 노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말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두 팔에 안고 감격에 찬 노래를 부르는 시메온을 바라보며, 노년기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계획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이 많이 먹었다고 해서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나가는구나 하며 좌절해서도 안되겠습니다.
어디 가서 나이 자랑 절대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나이 들수록 더 기도하고 더 영적으로 살아야겠습니다.

부질없는 고집도 내려놓고, 별 도움 안되는 자존심도 버려야겠습니다.
목숨 다하는 마지막 날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말아야겠습니다.
생명이 붙어있는 한 어떻게 해서든 움직여야겠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매일 눈에 띄게 소멸되어가겠지만 그와 반비례해서 영적인 영역은 더욱 성장시켜나가야겠습니다.
내 안에 나는 점점 작아지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점점 커지도록 나를 비워야겠습니다.
참으로 놀랍고도 신기한 소멸과 죽음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성찰해야겠습니다.
멋지고 훌륭하게 나이 드는 기술을 젊을 때부터 배워야겠습니다.
어제의 나약하고 죄투성이인 나와 매일 아침 결별해야겠습니다.
나를 안주하게 만드는 익숙한 환경으로부터 매 순간 탈출해야겠습니다.

투명한 아침 햇살도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부드러운 석양은 더욱 찬란합니다.
휘황찬란한 도시도 멋있습니다. 그러나 허물어져가는 고성(古城)은 그에 못지않게 멋있습니다.
사람들이 부러워할 명품 노인으로 당당히 서기 위해 지금부터 노력해야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