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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를 향한 당신의 극진한 사랑을 인간의 언어로 말씀해주시려고 내려오신 하느님!

12월25일 [주님 성탄 대축일]

4년 전 근처 낚시터에 유기된 작고 예쁜 믹스 강아지 두 마리를 구조한 적이 있었습니다. 언니 강아지는 뒷다리에 큰 부상을 입어 동물병원에서 큰 수술과 재활을 마친 후 입양을 보냈습니다.

동생 강아지는 저희 수도원에서 입양했는데, 이곳에 적응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불안했던 마음도 많이 안정되고, 영양 섭취도 잘 되서 그런지 인물도 살아나고 털에 윤기도 반질반질합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서울로 입양간 언니 소식이 없길래, 잘 지내고 있는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언니 강아지의 부고장이 날아온 것입니다. 예쁜 꽃들 한 가운데 언니 강아지의 영정 사진이 있는 걸 봐서 장례식까지 잘 치렀나 봅니다.

4년 여간 행복하게 지내던 언니 강아지가 얼마전 산책나갔다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해 무지개 다리를 건너갔다고 합니다. 장례를 잘 치렀고 화장해서 납골당에 잘 모셨다고, 사별로 인해 깊은 슬픔에 잠겨 있노라고…

언니 강아지의 부고를 들은 저는 갑자기 저희 집 식구가 된 동생 강아지 바둑이가 생각났습니다. 그래도 유일한 혈육인데, 측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바둑이를 불렀습니다. 품에 안고 알아 듣든지 말든지 상관없이 제가 그랬습니다.

“바둑아! 이제 너 어떡하냐? 서울 간 언니가 며칠전 세상을 떠났단다! 교통사고로. 누구든 언젠가 다 떠나는거니, 너무 슬퍼하지 말고 여기서 잘 살아라!”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냐?”고 몸을 흔들었지만, 바둑이는 어색한 표정으로 그저 멀뚱멀뚱 저를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제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내가 바둑이하고 말이 좀 통했으면 참 좋을텐데…참 안타깝다. 내가 강아지의 언어를 배울 수 있었으면, 보다 적극적으로 소통을 할 수 있었으면… 내가 사람이 아니라 강아지가 되었으면… 그럼 언니 소식도 전해주고 위로해줄 수 있었을텐데…

만일 말이 통하게 되면 언제나 궁금했던 질문 한 가지, 털도 그리 많지 않은 바둑이가 강추위에도 지붕 있는 집에 절대 안들어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볼 수 있을텐데…

제가 이 웃기는 체험을 말씀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성탄 신비의 열쇠가 제 작은 체험 안에 어느 정도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느님께서 가련한 우리의 처지가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우리를 도와주시려고, 우리와 눈높이를 맞추시려고, 우리와 보다 원활하게 소통하시려고, 우리를 향한 당신의 극진한 사랑을 인간의 언어로 말씀해주시려고… 아마도 그것이 육화강생의 이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또 다시 성탄을 경축하고 있습니다. 성탄이 지닌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우리는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바둑이를 사랑한다 할지라도, 정말로 강아지가 되고 싶냐고 물으신다면,
고개를 가로로 흔들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고개를 세로로 흔드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극진히 사랑한 나머지 정녕 당신 자신을 포기하셨습니다. 이 은혜로운 시기,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허리를 굽히셨습니다. 당신 키를 극도로 낮추셨습니다. 바로 나를 위해 당신 자신을 포기하시고 나와 하나되셨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