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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탄은 오늘 우리 한 가운데,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슬프고 고통스런 현실 안에서 시작됩니다!

12월24일 [주님 성탄 대축일 전야 미사]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과 시련의 길고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우리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성탄은 다가왔습니다.
힘겹게 견뎌내고 있는 전 세계 살레시오 가족들과 교우들을 위해 저희 살레시오회 앙헬 페르난데스 총장님께서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나는 희망이 되게 하는 믿음에 매료되었습니다.”

베트남 공산화 즉시 13년간 감금되셨고, 9년간 독방에서 생활하셨던 베트남의 가경자 구엔 반 투안 프란치스코 하비에르(1928~2002)의 말씀입니다.
추기경님의 간략한 말씀 안에는 힘겨운 한 해를 잘 견뎌낸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2020년을 마무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이 들어있습니다.

올 한해 우리는 엄청난 고통과 상실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면서 가정적,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어 왔습니다.
그리고 언제까지 계속될지 기약도 없습니다.

이토록 어려운 시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기 예수님의 성탄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난감하고 곤혹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성탄의 의미는 오늘 이 시대에 맞춰 계속 재해석되어야 하고 성찰되어야 합니다.

성탄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만나로 오시는 은혜로운 대 사건입니다.
오늘 이 순간도 하느님께서는 지속적으로 사람이 되시고, 특별히 오늘 성탄절 날 갓난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 각자에게 다가오십니다.

오늘의 어둠이 아무리 짙다할지라도 하느님께서는 항상 당신 백성과 동행하시며 아픔과 상실, 고통의 순간에도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다는 가장 강력한 표현이 곧 아기 예수님의 성탄입니다.

때로 고통은 우리를 더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게 만들고, 더 진지한 신앙 여정 속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이토록 혹독한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는 현실을 긍정적으로 바라봐야겠습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님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새해에는 모든 피조물을 훨씬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겠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고통 속에 있는 수많은 청소년들의 외침, 6천8백만명의 난민들의 안타까운 처지를
기억해야하겠습니다.
우리는 다른 곳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 탄생하시는 아기 예수님을 경배해야겠습니다.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가 각별히 주의해야 할 점 한 가지가 있습니다.
성탄절 하면 우선 떠오르는 이미지는 어떤 것들입니까? 성탄절의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마음에 드는 성탄 선물, 잘 차려진 성탄 파티, 달콤하고 로맨틱한 성탄 구유와 전례 등등…
성탄과 관련된 아름다운 추억들입니다.

그러나 2천년전 예수님께서 탄생하셨던 베들레헴의 마굿간에는 달콤하고 로맨틱한 분위기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현실은 냉정했습니다.
예수님 탄생의 분위기는 비참하고 서글펐습니다.
예수님 탄생 당시 사회적 상황 역시 암울했습니다.

하느님의 이 세상 육화강생은 태평성대 때가 아니라, 가장 암울하고 어려운 시대, 로마 식민 통치 시대,
가장 불안한 헤로데 왕정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 세상 안으로 들어오셨던 최초의 모습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로마 황제처럼 강력한 모습으로 오지 않으셨습니다.
지혜로 똘똘 뭉친 현자의 모습으로도 오지 않으셨습니다.
탁월한 능력을 지닌 해결사의 모습도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힘으로는 머리 조차 옆으로 돌릴 수 없는 갓난 아기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느님 인류 구원의 역사는 바로 오늘 우리 한 가운데,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슬프고 고통스런 현실 안에서
시작됩니다. 아기 예수님의 성탄 역시 이 어려운 시대,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 각자 안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