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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늘 우리는 과연 어떤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12월13일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대림시기 말씀의 전례 안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있으니, 세례자 요한입니다.
그 이유는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는 대림시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가르쳐주는 이정표요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벌써 대림 제3주일입니다.
이러다가 아무런 준비도 못한채 성탄을 맞이할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남아있는 대림 시기 동안 세례자 요한의 말씀들, 그의 삶과 죽음을 잘 묵상해보는 것도 아주 좋은 성탄 준비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눈으로 바라보니 세례자 요한의 생애는 재미라고는 하나도 없는 팍팍한 인생이었습니다.
힘겹고 고된 여정이었습니다.
또한 고독하고 슬픈 길이었습니다.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 세례자 요한은 소년티가 채 가시기도 전에 깊은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끝도 없이 펼쳐진 하늘과 황량한 불모지 밖에 없는 광야로 들어간 이유는?
조만간 구세사의 전면에 등장하실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광야에서 세례자 요한은 영적 생활에 충실하고자 초간단 미니멀리즘, 초근목피(草根木皮)의 삶을 살았습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곳으로 가는 에너지를 모두 차단시키고, 그 에너지를 깊이있는 기도생활에 투자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세례자 요한의 외양이 참으로 우스꽝스러웠습니다.
몸에 걸친 것이라고는 낙타 털옷 한조각이었습니다.
최고급 낙타 털옷이 아니라 길가다가 만난 죽은 낙타의 가죽을 벗겨 대충 만든 옷이었습니다.
가뭄에 콩나듯이 식사를 하셨는데, 먹기가 만만치 않은, 제대로 정제도 되지 않은 들꿀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거친 광야 생활은 그 자체로 죄와 타락, 금전과 우상 숭배로 얼룩진 유다 지도층 인사들을 향한 강력한 경고요 도전장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남다른 기대감을 안고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메시아께서 오시면 부패하고 타락한 이 세상을 깔끔히 정리하시리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썩어빠진 무리들을 심판하시고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시리라 믿었습니다.

드디어 그토록 고대하던 메시아께서 세례자 요한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첫 증인인 세례자 요한은 뛸듯이 기뻤을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광야로 들어가 쌩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진 것 같아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돌아가는 분위기를 유심히 살펴보니, 정작 예수님께서 구세사의 전면에 등장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크게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악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떵떵거리면서 희희낙락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압제는 여전했습니다.
헤로데 역시 변화되기란 글렀습니다.

세례자 요한 스스로를 바라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애써 교육시킨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넘긴지 오래였습니다.
한 때 이스라엘 전역을 들었다 놨다 하던 세례자 요한이었는데, 지금은 깊은 지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평생토록 공들였던 그 모든 것들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에 세례자 요한은 무척 슬펐을 것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하며 탄식을 터트렸을 것입니다.
지하감방에 갇혀 있던 그는 너무 답답했던 나머지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보내 묻게 합니다.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마태오 복음 11장 3절)

보십시오.
그토록 위대한 세례자 요한도 아직 걸어야 할 길이 많이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그 역시 죽음 일보 직전 까지 예수님의 신원에 대한 의구심을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역시 예수님을 통해 변화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도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다린 메시아는 다분히 정치적이고 현실적인 메시아였습니다.
백성들이 메시아를 통해 기다렸던 것은 로마 제국의 압제로부터 독립이었습니다.
식민 통치의 종식이었습니다.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한 태평성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 한번도 그런 비슷한 말씀을 하신 바가 없습니다.
틈만 나면 되풀이하신 말씀은 그저 사랑하라는 말씀, 원수조차도 사랑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어떤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