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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멸망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하느님 없이 스스로 서려는 인간 측의 교만입니다!

12월10일 [대림 제2주간 목요일]

바깥 일을 하다보면 틈만 나면 만나게 되는 것이 벌레요, 구더기요 지렁이입니다. 처음에는 섬뜩했지만 습관이 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려니 하고 눈길 한 번 주지 않습니다.

뱀이나 두더지, 고라니 정도 되면 호기심을 갖고 유심히 들여다보곤 하지만, 벌레나 구더기나 지렁이는 하찮은 미물로 여기고,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지요.

그런데 오늘 하느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서를 통해 정녕 놀랍고도 은혜로운 말씀을 우리에게 건네십니다. “나 주님이 너의 하느님, 내가 네 오른 손을 붙잡아 주고 있다. 나는 너에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두려워하지 마라, 벌레 같은 야곱아, 구더기 갈은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이사야서 41장 13~14절)

하느님께서 벌레 같고 구더기 같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찮게 여기지 않으시고 눈여겨보시겠답니다. 하느님께서 벌레 같고 구더기 같은 오늘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당신 친히 우리의 오른 손을 붙잡아주시겠답니다. 만사 제쳐놓고 우리를 도와주시겠답니다.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이며 황홀한 말씀인가요?

아마도 우리의 하느님께서는 작고 미천한 존재를 각별히 사랑하시는 특별한 분이 틀림없습니다. 나름 난다긴다 하는 사람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존재들은 사정없이 내리치십니다. 대신 벌레나 구더기같은 미물인 존재들, 가련하고 안쓰러운 존재들을 눈여겨보시며 알뜰살뜰 챙기십니다.

오늘도 하느님께서는 하느님 두려운 줄 모르고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사람, 병고나 죽음, 실패나 좌절은 나와는 별개의 것이라며 희희낙락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눈길 한번 주지 않으시고 외면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도 심연의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내일을 기약할 수 없어 가슴이 미어지는 사람들, 한꺼번에 불행이란 불행이 들이닥쳐 주저않아 있는 사람들을 각별히 눈여겨보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들의 십자가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당신 친히 십자가를 나눠 짊어지시리라고 확신합니다.

결국 따지고 보니 우리가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과 자리를 듬뿍듬뿍 받고 싶다면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뿐입니다. 큰 존재, 엄청난 존재, 대단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존재, 도움이 필요한 존재, 그래서 하느님께 간절히 매달리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신학에 따르면, 유다 왕국의 멸망, 그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하느님 없이 스스로 서려는 인간 측의 교만’이었습니다.

주님 없이도 잘 할 수 있다는 오만, 주님을 향한 신뢰의 심각한 결핍이 결국 유다 왕국을 파멸로 이끌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사야 예언자는 ‘임마누엘 신탁’을 강조합니다. ‘언제나 우리 사이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런 결론에 도달합니다.“두려워 말고 주 하느님께 의지하라.”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