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칼럼

산산조각난 내 인생의 조각들을 하나 하나 주워 모으셔서, 찬란한 명품으로 재탄생시켜주시는 예수님!

12월4일 [대림 제1주간 금요일]

한 고마운 후원자께서 존경하는 정호승 시인의 신간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비채)를 보내주셔서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60여편의 주옥같은 시와 산문이 어우러진 참으로 매력적인 책입니다. 정호승 선생님께서는 스물 세 살에 등단하셔서 지금까지 총 13권의 시집을 통해 천 여편의 시를 쓰고 발표하셨다는데, 그중 당신께서 늘 가슴에 품고 다니시는 최애시(最愛詩)가 한 편 있답니다.

그 시의 제목은 ‘산산조각’입니다.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오늘 우리가 봉독하는 복음서에도 인생이 처참하게도 산산조각난 두 인생이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는데, 눈먼 사람 둘이 따라온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 당시 시각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혹독한 일이었습니다. 당시 의료 수준으로 회복이나 치유는 꿈도 꿀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당시 사회 분위기 상 시각 장애인들에 대한 배려나 복지 혜택은 언감생심이었습니다.

가족들도 나몰라라, 공동체도 그들을 소외시켰습니다. 더 억울한 일이 또 하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시각 장애를 죄에 따른 벌로 여겼습니다. 앞을 못보는 불편함에 죄인 취급까지 받으니 그 삶이 얼마나 힘겨웠겠습니까? 한 마디로 두 사람의 삶은 산산조각 난 것입니다. 산산조각 났으니, 더 이상 내려설 곳도 없었습니다. 부끄러워하거나 체면 차릴 여유도 없었습니다. 치유자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들은 두 눈먼 사람은 남아있는 모든 에너지를 다 동원해서 크게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마태오 복음 9장 27절)

이윽고 자비하신 예수님께서 산산조각난 두 사람의 인생을 측은지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셨습니다. 가엾은 마음이 든 예수님께서 산산조각난 두 사람 인생의 조각들을 하나 하나 주워모으셨습니다. 마침내 산산조각난 두 인생을 당신 뜨거운 사랑의 용광로 속에 넣으셔서, 찬란한 명품으로 재탄생시키셨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저 역시 산산조각난 인생일 뿐입니다. 주님 크신 은총 아니라면 단 한 순간도 제발로 서있을 수 없는 인생입니다. 그저 주님 자비만 바랄 뿐입니다. 주님 뜨거운 사랑만 기대할 뿐입니다. 아침이면 아침마다 크게 외쳐야겠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