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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버림의 미학

11월30일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대림 제1주간 월요일]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병(病)중에 정말 특별한 병이 하나 있더군요. ‘모으는 병’. 지독하게 심한 환자를 본적이 있습니다.

버리는 것은 하나도 없고 뭐든지 다 모아놓기만 합니다. 방이고 거실이고 베란다고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현관문을 열면 쌓아놓은 물건으로 인해 가슴이 답답합니다.

걸어 다니려면 여기저기 쌓인 물건들을 피해 조심조심 발을 내딛어야 합니다. 그렇게 모아놓은 것들이 뭐 대단한 것들인가, 하면 절대로 아닙니다.

물건뿐만이 아니겠지요. 머릿속이 너무 많은 것들로 꽉 찬 분들도 계십니다. 살다보면 힘든 일도 생기고 가슴 아픈 일들도 내 눈앞에서 벌어집니다. 좋은 기억, 나쁜 체험, 아픈 추억, 가지각색의 다양한 이미지들이 우리 기억 창고들을 드나듭니다.

컴퓨터에 너무 많은 것들을 저장해놓으면 돌아가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는데, 빨리 돌아가게 만들려면 방법은 단 한 가지입니다. 쓸모없는 아이템들은 빨리 삭제를 해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정신, 영혼, 기억의 세계도 마찬가지겠지요. 우리 뇌의 기억창고가 무한한 것이 아닙니다. 미래지향적 삶, 현재에 충만한 삶을 위해 더 이상 도움이 안 되는 기억들은 지워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버릴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버림은 더 큰 것을 얻기 위한 시작입니다.

오늘 축일을 맞는 안드레아 사도 역시 더 큰 가치관을 얻기 위해 지난 삶의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밥벌이 도구였던 거금의 배를 버렸습니다. 손때 묻은 어망도 버렸습니다. 정들었던 가족들도 뒤로 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아에게 있어 지금까지 투자해온 삶을 바꾸는 일, 크게 인생의 방향을 트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안드레아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사람 낚는 어부’란 말씀이 지닌 의미가 무엇인지, 예수님을 따라나선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안드레아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앞뒤 계산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따라나섭니다. 지금 당장은 뭐가 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지만, 따라나선 후의 삶도 전혀 기약하지 못하지만, 예수님을 통해 어떤 큰 이끌림, 뭔가 큰 흐름을 느꼈습니다. 그 큰 끌림에 따랐습니다.

참으로 큰 버림이요, 큰 도전이요, 큰 투신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요즘 ‘버림’,‘비움’이란 말이 재해석되고,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들이 여기저기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비우면 채워지고 버리면 얻게 된다!”

기업 컨설팅 전문가들도 외칩니다.
“장래성이 없거나 본질에 맞지 않는 사업은 과감히 포기해야 합니다.”

의류 디자인 전문가들도 강조합니다. “옷을 디자인할 때는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욕심을 버릴 때 좋은 디자인이 나옵니다. 단순화시킬 때 명품이 탄생합니다. 버린다는 것은 다른 말로 기본에 충실하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다시 한 번 안드레아 사도께서 크게 버림으로 인해 크게 얻었음을 기억합니다. 오늘 내 삶에서 다시 한 번 버려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