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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결국 인내가 모든 것입니다!

11월25일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지나온 날들을 뒤돌아보시면 다들 지우고 싶은 기억들 한 두 가지 씩 있으시겠죠? 특히 그때 어떻게든 참았어야 했는데, 그 한 순간을 참지 못해 오랫동안 쌓아왔던 점수 다 깎아먹은 기억 말입니다.

심호흡 한번 크게 하고 그 순간을 넘겼으면 좋았을 텐데 그걸 못 참아서 나도 그도 큰 상처를 입고, 두고두고 부끄럽고 면목 없는 흑역사(黑歷史)는 수시로 떠올라서 우리들을 괴롭힙니다.

저도 잊어먹고 잘 지내다가도 불현 듯 지우고 싶은 흑역사가 머릿속에 떠오르면 자다가도 크게 한숨을 푹푹 쉽니다. 괜히 죄 없는 이불을 있는 힘을 다해서 발로 찹니다. 그리고 혼잣말로 외칩니다.
“그때 내가 대체 왜 그랬지? 정말 내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

그런데 다행인 것은 우리보다 앞서 살아가신 위대한 대성인들도 이런 면에서는 우리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들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와 똑같이 어처구니없는 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역대급 과오를 범했습니다.

급하고 과격한 성격 자제하지 못해 일을 저지르고서는 두고두고 후회하고 반성하며 마침내 인내의 최고봉에 올라간 분들이 성인(聖人)들이었습니다.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이 타고난 결함과 결핍으로 인해 괴로워하면서 마침내 자신을 극복하고 벗어나는데 성공한 성인들께서 오늘 우리들을 향해 이렇게 권고합니다.

“결국 인내가 모든 것입니다.”

조만간 골고타 언덕에서의 십자가 죽음이라는 극한의 인내를 앞둔 예수님께서도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복음 21장 19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 이 세상 안에서 뭔가 대단한 것들을 꿈꾸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습니다. 뒤돌아보면 우리 모두 공감하듯이 우리네 인생사 안에서 순풍에 돛단듯한 나날은 불과 며칠도 안 됩니다. 하루하루가 좋아 죽을 것 같은 호시절은 찰나입니다. 내게 호의적인 주변 환경은 드뭅니다. 내 마음에 딱 드는 사람들 만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우리의 기대치를 대폭 낮추는 것입니다. 자주 인생의 역풍을 만나더라도 마음 크게 먹고 ‘그러려니!’ 하는 것입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나를 크게 낮추는 것입니다. 주변 상황과 타인이 나를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입니다. 대신에 나를 그들과 맞추고 나를 보다 넓히고 성장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결국 이런 모든 노력의 기초요 첫 출발점은 인내입니다.

구원자 예수님께서 주실 구원은 아무에게나 해당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인내로써 모든 것을 얻을 것입니다. 인내하는 사람만이 구원이 가능합니다. 죽어도 양보 못하고, 틈만 나면 내지르고, 여기서 폭발 저기서 폭발, 좌충우돌하는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은 요원합니다. 어쩌면 그들은 살아서부터 벌써 지옥이나 연옥 벌을 제대로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무엇에 대해 인내할 것인가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우리는 오늘 누구에 대해 인내할 것인가 성찰해봐야겠습니다.

끝도 없이 인내하신 하느님, 해도 해도 너무할 정도로, 마치 바보처럼 인내하신 예수님의 인내 앞에 우리의 보잘 것 없는 인내를 비추어 봐야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