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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자료 , 평생양성자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4년 11월 5일에 카타니아에서 그를 복녀로 선포했다.

복녀 막달레나 모라노 동정 기념(1115)

막달레나 카테리나 모라노는 1847년 11월 15일, 키에리(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났다. 피에몬테에서 34년을 살며 아버지와 형제들의 죽음과 비참할 정도의 가난함을 겪었다. 그는 젊은 시절, 자신의 마을 어린이들 가운데서 교생 실습을 했고, 노동하는 중에 틈틈이 독학으로 초등학교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후 12년간 교사 생활을 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인격도 환하게 꽃피었다.

서른한 살(1878년)에 돈 보스코를 만났다. 교육과 교리교육 경험을 풍부하게 쌓은 그는, 1879년 ‘도움이신 마리아의 딸(살레시오 수녀)’이 되었고, 주님께 성덕을 완성할 때까지 생존해 있을 은총을 청했다.

1881년에 살레시오수녀회의 사업이 막 시작된 시칠리아 섬으로 파견되었고, 그곳에서 서민층의 어린이들과 처녀들 사이에서 결실 풍부한 교육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땅을 한 번 보고, 열 번 하늘을 바라보면서” 섬의 이곳저곳에 여러 학교, 오라토리오, 기숙학교, 양재소 등을 개설했다. 관구장으로 임명된 후에는 그의 열정과 그의 주변에 형성되는 공동체 분위기에 이끌려 들어오는 수많은 성소자들의 양성 책임도 지게 되었다. 그의 수많은 사도직은 주교의 인정과 격려를 받았고 주교는 교구의 교리교육 업무 전체를 그에게 맡겼다.

막달레나 모라노 수녀는 개인적인 이기심에 굴하지 않고, “은총의 역사를 방해하지 않겠다.”는 의도대로 줄곧 충만한 언행일치의 삶을 살다가 1908년 3월 26일 카타니아에서 선종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4년 11월 5일에 카타니아에서 그를 복녀로 선포했다.

시복 다음 날 있었던 축하 미사에서 살레시오회 총평의원인 조반니 페드리고티 신부는 강론을 통해 이렇게 강조했다.

“막달레나의 성덕은 청년기의 꿈에 대한 충실의 열매입니다. 막달레나는 ”천국에서 우리가 갖게 되는 골방은 죽을 때까지 날마다, 작은 돌들을 하나씩 쌓아 올려 지어야 한다.“는 말을 즐겨 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두 가지를 강조하려 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첫째, 성덕은 느린 걸음이라는 것, 매일은 사소한 일들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막달레나 수녀님의 삶을 아는 사람은 이 여성이 ‘비상한 분’이었지만, 일상의 여성, …매일의 수고와 고통 속에서 살아간 여성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둘째, ‘비상함’이란 ‘위대한 계획’ 속에 들어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녀는 내면적으로 이 위대한 계획을 마리아의 마음으로 알아차렸고, 이에 동의하면서 매일 마르타의 손으로 인내를 다하여 그 계획을 따라 수놓았습니다.” (테레시오 보스코, 『막달레나 모라노』 355-3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