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양성자료 , 평생양성자료

요한 바오로 2세는 2002년 4월 14일에 그를 복자로 선포했다.

복자 아르테미데 자티 수도자 기념일(1113)

아르테미데 자티는 보레토(이탈리아 에밀리아)에서 1880년 10월 12일에 태어났다. 그는 일찍부터 희생을 체험했다. 아홉 살이 되었을 때 일용직 노동자로 생계를 해결해야 했다. 가난에 밀려 1897년 초에 아르헨티나로 이주하여 바리아블랑카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아르테미데는 살레시오 회원들이 이끄는 본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살레시오 회원이 되라는 조언을 받았고, 조반니 칼리에로 주교가 그를 지원자로 받아들였다. 이미 스무 살이 된 그는 베르날 분원에 들어가 폐결핵을 앓고 있는 젊은 사제를 간호하는 임무를 받았다. 그러던 중 아르테미데도 그 병에 감염되어 비에드마에 있는 산호세 병원으로 보내졌다. 이곳에서 그는 사제이며 임상의인 에바리스코 가로네 신부의 특별한 보살핌을 받았다. 그는 환자들을 보살피는 일에 일생을 바치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그 사제와 함께 도움이신 마리아께 전구를 청하여 치유의 은혜를 받았다.

병이 치유된 후, 그는 그 약속을 지켰다. 1908년에 살레시오 수사로 종신서원을 했다. 처음에는 병원에 딸린 약국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그 후 병원을 전적으로 책임지게 되었다. 그 병원은 자티 수사에게 성덕을 닦는 훈련장이 되었다. 그는 환자들에게 온전히 헌신했다.

1913년 새로운 병원 건축 책임을 맡아 병원을 지었는데 그 병원은 1941년에 신생 비에드마 교구 주교관 터로 내주기 위해 헐렸다. 그는 실망하지 않고 다른 병원을 마련했다.

돈 보스코처럼 그의 사업의 첫째이며 확실한 수입원은 하느님의 섭리였다. 암에 걸려 1951년 3월 15일에 선종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2002년 4월 14일에 그를 복자로 선포했다. 그의 유해는 비에드마의 살레시오 성당에 안치되었다.

“아르헨티나 남부의 작은 도시인 비에드마에서 살레시안으로서 50여 년간 기쁜 마음으로 의료사도직에 평생을 바친 자티 수사. 그는 돈 보스코 예방교육 영성이 교육현장뿐 아니라 의료 분야에도 고유하게 기여할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 주었다. 즉, 돈 보스코의 방식으로 착한 사마리아인으로서, 가난한 환자를 마다하지 않고 돌보아 주며, 친절한 아버지로서 일생을 바친 것이다.”(피터 라핀, 『자티』 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