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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그리스도를 통한 새로운 생활은 인간 사회 안에 존재하는 모든 차별과 장벽을 무너트리는 것입니다!

11월12일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연중 제32주간 목요일]

가까이 있는 한 인간 존재, 특히 노예였던 오네시모스를 향한 바오로 사도의 따뜻한 마음과 자비심이 경탄을 불러일으킵니다.
당시는 신분제가 엄격히 준수되고 있던 시대였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당시 노예는 인간 취급을 못받고 거의 가축 취급을 받았습니다.

몸값을 치르고 산 주인은 노예에 대한 생사여탈권까지 지니고 있었습니다. 노예는 주인이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내야할 정도로 슬픈 운명의 소유자였습니다.

당시 큰 도시에는 요즘 가축 시장처럼 노예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노예들은 노예상들에 의해 발에 족쇄가 채워진 채 시장 한 모퉁이에 앉아 고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노예를 원하는 사람들은 매물로 나와있는 노예들을 가축 고르듯이 골랐습니다.입을 벌려 치아 상태가 괜찮은지 확인해봤습니다. 근육이 단단한지 만져보기도 하고 때려보기도 했습니다. 피부는 괜찮은지 여기저기 샅샅이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노예상과 흥정을 시작합니다. 참으로 슬프고도 비참한 광경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노예 오네시모스를 향해 바오로 사도는 ‘내 심장’ ‘내 아들’ ‘내 동지’ ‘사랑하는 내 형제’라고 칭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그런 모습은 당시 사회 분위기 안에서 얼마나 충격적인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노예 제도를 당연시 여기고 있던 사람들이 들으면 펄쩍 뛸 일이었습니다.

그만큼 바오로 사도는 시대를 앞서 사셨던 분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니 바오로 사도는 노예 해방 운동에 일찌감치 뛰어든 분이었습니다. 그런 바오로 사도의 생각은 예수님이 지니셨던 보편적 인류애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사실 오네시모스는 원래 필레몬의 노예였습니다. 어찌어찌하다가 필레몬의 집에서 도망을 쳤고, 바오로 사도를 만나, 크게 감화를 받고, 바오로 사도의 옥바라지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노예 오네시모스의 소유주가 필레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바오로 사도는 제발 오네시모스를 용서해달라고, 그를 선처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고 있습니다. 부탁하는 뉘앙스가 얼마나 간절한지, 들어주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입니다.

“내가 옥중에서 얻은 내 아들 오네스모스의 일로 그대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나는 내 심장과도 같은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이제 그를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하는 형제로 돌려받게 되었습니다. 그대가 나를 동지로 여긴다면, 나를 맞아들이듯이 그를 맞아들여 주십시오.”(필레몬서 10~17절)

사실 로마 시민권자였던 바오로 사도의 이런 발언은 당시 굉장히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탈주 노예에게는 가차 없는 체벌이 가해졌습니다. 대체로 노예를 놓친 주인은 크게 분노하며 잡혀온 노예를 인정사정없이 다뤘습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는 그가 세례를 받았으니 제발 좀 잘 봐달라고 신신당부하고 있습니다. 당시 사회 기강이나 질서를 교란시키는 행위로 간주될 행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오로 사도의 권고가 이토록 간절한 이유는 그리스도 신앙 안에서는 더 이상 주인이나 노예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더 이상 귀족이나 천민의 구분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 신앙이 좋은 것이 주님 안에 모든 구성원들이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 모든 신자들은 빈부나 지위 여하에 상관없이 한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새로운 생활은 인간 사회 안에 존재하는 모든 차별과 장벽을 무너트리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마음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바오로 사도는 필레몬에게 오네시모스를 동지요 벗으로 받아들이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필레몬에게 편지를 썼던 당시 바오로 사도의 처지를 생각해봅니다. 놀라운 것이 그 역시 깊은 감옥에 갇혀 있었고 발에는 쇠사슬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오네시모스보다 훨씬 더 못한 처지에 놓여있었습니다. 또한 스스로의 표현처럼 이제는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 노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처지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오네시모스의 안위만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 척박하고 피폐한 세상에 정말 필요한 것이 바로 바오로 사도가 지녔던 그 따뜻한 마음입니다. 자신의 상태가 어떻든 아무 상관없습니다. 자신의 코가 석자지만 이웃을 먼저 생각합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