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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살아있는 사랑, 그 가장 구체적인 표현은 고통받는 이웃들을 향한 따뜻한 마음, 측은지심입니다!

11월11일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연중 제32주간 수요일]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님의 축일이 다가올 때마다, 마음씨 따뜻한 한 형제님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저희 수도자들에 대한 마음이 각별하셔서, 언제나 뭐 하나 더 못해주셔서 안타까워하시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한번은 형제님께서 저희 수도원을 방문하셨는데, 살아있는 성인(聖人) 같은 분이셨지만, 그에 못지 않게 장난끼가 많으셨던 노신부님을 만났습니다. 마침 날씨가 스산해지는 겨울 초입이었는데, 형제님 보시기에 운동을 마치고 들어오시는 반팔차림의 신부님 모습이 너무 마음에 걸리셨던가 봅니다.

형제님께서는 갑자기 당신이 입고 계시던, 당시 전국민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당시 그 자리에서 현찰과 맞바꿀 수도 있었던 점퍼를 벗어 신부님께 입혀 드렸습니다. 그 순간 얼굴이 환해지신 신부님의 장난기가 발동했습니다. 형제님이 입고 계신 바지를 가리키면서 하시는 말씀 “이 바지도 아주 좋아보여요!”

그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형제님께서는 조금도 지체없이 바지를 갈아입으러 당신 차로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당혹스런 나머지 형제님의 팔을 잡으면서, 바지만은 절대 안된다며 겨우 만류했습니다.

오늘 축일을 맞이하시는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님께서도 바로 그런 분이셨습니다. 한 추운 겨울 날이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의 군인으로서 열심히 예비자 교리를 받고 있던 마르티노가 말을 타고 교외로 나갈 때였습니다.

한 가련한 거지가 나타나 마르티노에게 손을 벌렸습니다. 태생적으로 인정 많고 마음 따뜻한 그였기에, 즉시 지갑을 꺼내 지폐 몇장을 쥐어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필 그날 따라 지갑은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잠깐 난감한 기색을 하던 마르티노는 지체없이 허리에 차고 있던 장검을 뽑아들었습니다. 물론 그 순간 거지는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이 군인이 갑자기 왜 이러시나?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나 마르티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뽑아든 칼로 자신이 걸치고 있던 외투를 반으로 잘랐습니다.

“형제님! 지금 제가 가진 돈이 없어 정말 죄송합니다. 날씨도 추운데 이 외투로라도 찬 바람을 막으십시오.”

반쪽짜리 외투만 걸친채 숙소로 돌아가는 마르티노를 본 사람들은 다들 웃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마르티노의 꿈에 반쪽짜리 외투를 입은 거지가 나타났는데, 그분은 곧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옆에 서 있는 천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입고 있는 이 외투는 아직 예비 신자인 마르티노가 내게 준것이란다.”

그 특별한 꿈은 마르티노 생애 전체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에게 있어 세상 속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은 곧 예수님이셨습니다. 그의 자비심과 측은지심은 점점 커져갔고, 그로 인해 해방되고 새 삶을 시작한 노예나 종의 숫자는 이루 다 셀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간절히 바라던 세례를 받자마자 마르티노는 군대를 퇴역했습니다. 성 힐라리오 주교를 찾아가 사제품까지 받았습니다. 투르의 주교가 선종하자 역사상 전무후무한 특별한 일이 생겼습니다.

투르 교구 내 성직자, 수도자, 신자들 일동이 한 목소리로 들고 일어나 마르티노를 투르 교구의 주교로 추대했습니다. 지극히 겸손했던 그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몸을 숨겼지만, 사람들은 끝까지 그를 찾아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많은 사목자 투르에게 장수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당시로서는 초고령인 80세까지 살게 하셨습니다. 최후의 모습 역시 장엄했습니다. 교구내 가장 외진 지역을 사목방문하던 중 중병에 걸려 선종했습니다.

제자들은 투르 주교의 병상 주변에 둘러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전국민적인 애도가 계속되었습니다. 그와 관련이 컸던 두 지역 포아티에와 투르는 성인의 유해를 서로 모셔가려고 쟁탈전까지 벌였습니다.

결국 마르티노가 주교로 사목했던 투르에서 장례미사가 거행되었고, 거의 모든 시민이 장례미사에 참석했으며, 2천여 명이 넘는 수도자들의 장례행렬은 장관 중의 장관이었다고 전해집니다.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의 생애를 묵상하면서, 절실히 드는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사목자가 교우들을 지극정성으로 사랑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사목자가 교우들로부터 극진한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사랑은 일방적이어서는 안됩니다. 사랑은 오고가야 바람직합니다. 또한 사랑은 멈춰서 있어서는 안됩니다. 역동적으로 움직여야 참 사랑입니다. 살아있는 사랑, 숨쉬는 사랑, 그 가장 구체적인 표현은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들을 향한 따뜻한 마음, 배려심, 측은지심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