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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교우들로 인해 교회가 빛납니다. 신자들은 사목자들의 존재의 이유입니다!

11월9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코로나19 바이러스 팬데믹 시대가 의식있는 분들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성전, 참된 의미의 교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습니다.
많은 사목자들이 텅텅 빈 성전에 홀로 기도하면서 교우 한분 한분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가를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교우들로 인해 교회가 빛나는구나, 신자들은 사목자들의 존재 이유로구나’ 하는 뒤늦은 깨달음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위용을 자랑하는 높이높이 올라간 교회 첨탑,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성전도 교우들이 사라져버리니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물론 걸작 성화나 성상들로 장식된 위풍당당한 건물로서의 성전도 가치가 있지만, 더 중요한 존재는 교회 구성원 한명 한명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부 몰지각한 목자들은 어떤 일이 있더라고 성전에서의 현장 예배를 포기할 수 없다며 윽박지르며 신도들을 혼란과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성전에 대한 개념 파악을 하지 못한 과오입니다.

예수님의 육화강생으로 인해 이제 성전에 대한 종래의 개념을 완전히 폐지가 되었습니다.
그분으로 인해 이제 새로운 차원의 성전 개념이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복음 2장 19절)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유다인들의 반응이 격렬했습니다.
분노에 치를 떨고,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예수님을 성전 모독죄로 고발하기 일보 직전입니다.

“이 성전을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었는데, 당신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오?”
(요한 복음 2장 20절)

예수님께서는 성금요일 당신의 수난과 십자가 죽음을 통해 극도로 훼손되고 속화된 성전을 완전히 허무셨습니다.
당신의 영광스런 부활을 통해 새로운 성전을 재창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성전은 이제 더 이상 허물어지지 않는 영원한 성전입니다.
예수님 존재 그 자체가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매일의 성체를 영하는 우리 각자가 또 다른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매일의 삶속에서 구체화시키는 교우들 한명 한명이 또한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둘이나 셋이 모여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는 가정은 그 어떤 성전보다 아름다운 성전입니다.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은 세상속의 성체요, 세상 속의 예수님이요, 예수님께서 가장 각별히 사랑하시는 개별교회입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한국 교회는 진지하게 지난 순간들을 성찰하며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교회의 공동체성의 회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할 순간입니다.

기원후 79년 대역병이 로마 제국을 휩쓸었습니다.
로마 정치가이자 역사가였던 타기투스의 ‘연대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마인들이 집안 마다 시체가 가득 쌓여 있고, 거리 곳곳에 장례 행렬이 이어졌다.”
그러나 로드니 스타크는 ‘그리스도교의 발흥’이란 책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로마가 대 역병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그리스도교는 오히려 급성장했다.
당시 인구의 2/3가 죽어 나갈 때, 그리스도인들과 공동체는 환자들의 간호에 전념했다.
사람들이 모두 도시를 떠날 때에도 끝까지 남아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이렇게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희생과 헌신이 로마 사회에 새로운 네트워크를 제공했다.”

이 특별하고 어려운 시기, 오늘 우리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깊이 있게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