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칼럼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을 꼭 빼닮았습니다. 모든 것을 뒤집고 세차게 흔들어버립니다!

11월5일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사도 바오로의 서간을 읽고 묵상할 때 마다 너무나도 솔직하고 담대한 특유의 필치에 깜짝 깜짝 놀라기도 하고 크게 감동받기도 합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글을 쓰시거나 가르침을 주실 때, 일말의 망설임도 없습니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거나 위축되지 않습니다.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조금의 가감도 없이 외치고 고백하십니다.

‘라떼형 인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에 저는 라떼형 인간이라함은 우유처럼 부드러운 사람을 의미하는가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라떼(나때)는 말야~’가 입에 붙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과거에 나름 한 자리씩 차지했던 사람들, 그 ‘라떼는~’으로 시작하는 에피소드들을 총 결산해서, 자서전이라든지 성공담 비슷한 책을 한 권씩 내더군요.

언젠가 하도 세간에 말들이 많아 그 잘난 자서전 한 권을 펴들었습니다. 정말이지 제 낯이 다 화끈거리더군요. 참 이상했습니다. 부끄러움 유발자는 자서전까지 펴내면서 저리도 떵떵거리며 살아가는데, 부끄러움은 왜 내 몫인지 모르겠더라구요. 과대포장과 자화자찬, 역사 왜곡과 후안무치로 가득한 책을 훑어보느라 소모한 시간이 정말 아까웠습니다.

이런 면에서 바오로 사도의 솔직담백함이 참으로 존경스럽고 멋져보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절대 스스로를 과대포장하는 법이 없습니다. 있어 보이려고 발버둥치지 않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 자신의 흠과 약점을 자랑합니다.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은 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벤야민 지파 출신이고, 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이며,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입니다.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고, 율법에 따른 의로움으로 말하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필리피서 3장 5~6절)

이어지는 말씀은 더욱 우리를 감동의 도가니로 몰고갑니다.
“그러나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하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필리피서 3장 7~8절)

이 얼마나 놀라운 솔직함이며 이 얼마나 경이로운 대반전입니까? 바오로 사도는 스승 예수님을 꼭 빼닮았습니다. 모든 것을 뒤집고 세차게 흔들어버립니다. 틈난 나면 세상 사람들의 보편적인 논리나 사고방식을 완전 뒤엎어버립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시는 예수님의 노선 역시 바오로 사도의 노선과 똑같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루카 복음 15장 7절)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자신들만 옳고 의로우며 천국이 보장된 사람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자신들 편이므로 주님의 은총도 필요치 않았습니다. 스스로 충분히 거룩하기에 주님 편의 도움도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생각은 달랐습니다. 주님께서는 외적인 것보다 내면의 것, 마음을 더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한 인간 존재가 자신의 비참함과 한계성을 명료하게 인식하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결국 필요한 것은 주님의 자비라는 것을 확신할 때, 주님의 은총은 덤으로 따라오는 선물인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가 주님을 향한 신뢰를 능가하고, 자신에 대한 사랑이 주님을 향한 사랑을 넘어설 때, 결국 완고함과 자만으로 내면이 가득할 때, 주님의 은총은 요원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