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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자료 , 평생양성자료

돈 루아가 돈 보스코의 후계자가 되었을 때(1888년), 참으로 모든 면에서 돈 보스코와 “반반씩 나눈 것” 같았다.

복자 미켈레 루아 기념일(1029)

1837년 6월 9일, 토리노에서 출생한 미켈레 루아(Michele Rua, 1837-1910)는 아직 소년이었을 때(1845년 9월) 돈 보스코를 만났다. 돈 보스코는 상징적인 몸짓으로 미켈레가 삶 속에서 모든 것을 자기와 반반씩 나눌 것임을 미리 알렸다. 전기 작가 테레시오 보스코는 이 만남을 아래와 같이 서술하고 있다.

“1845년 9월 몰리니에서 돈 보스코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이 있었다. (오라토리오에 온) 소년들은 돈 보스코 앞에서 서로 메달을 받으려고 밀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여덟 살쯤 된 창백한 소년이 서 있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2개월 전에 세상을 떠났다. 꼬마는 밀쳐 대는 아이들 틈에 끼지 않고 조용히 따로 서 있었다. 메달이 다 떨어졌기에 아이는 메달을 받지 못했다.

그때 돈 보스코가 웃으며 그에게 다가와 말했다.

‘미켈리노, 가져라. 가져!’

무엇을 가지란 말일까? 그날 처음 만난 그 이상한 신부는 그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단지 왼손바닥을 그에게 내밀면서 오른손으로 그것을 반으로 자르는 시늉을 했다. 소년은 의아한 눈길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신부는 그에게 말했다.

‘우리 둘은 무엇이나 반반씩 나누어 갖게 될 거야.’

돈 보스코는 그 순간에 무엇을 보았을까? 그는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지만, 장차 그 소년은 자신의 오른팔이자 첫 후계자로 살레시오 수도회의 총장이 될 것이었다.”(테레시오 보스코, 『돈 보스코』, 254쪽)

미켈레 루아는 1855년에 첫서원을 하였고, 아직 차부제일 때 갓 설립된 살레시오회의 영적 지도자로 선정되었다.

돈 루아가 돈 보스코의 후계자가 되었을 때(1888년), 참으로 모든 면에서 돈 보스코와 “반반씩 나눈 것” 같았다. 그는 창립자의 열망과 사도적인 사업에 대한 독보적인 충실성을 보여 주었다. 돈 보스코의 매력적인 부성애를 물려받았고, 청소년들을 위한 그의 사도적 열정을 이어 갔으며, 이를 변화된 사회 상황에 적응시켰다. 그의 총장 임기 22년 동안 형제들의 사업체들을 공고히 하고 지원하기 위하여 수많은 여행을 하였고, 자주 회람서한과 개인서한으로 격려했다. 이런 편지들은 창립자의 정신에 대한 권위 있는 해설의 역할을 했다.

그는 1910년 4월 6일, 토리노에서 선종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1972년 10월 29일에 그를 복자로 선포하면서 시복식 강론 중에, 창립자의 후계자로서 그의 사명과 성덕을 부각시키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는 후계자 즉 계승자이자 아들, 제자이자 모방자였다. 그는 요한 보스코 성인의 모범을 하나의 학교로 만들고, 그의 개인 사업을 방대한 단체로 만들었다. 다시 말하면, 돈 보스코의 삶을 하나의 역사로, 그의 규칙을 하나의 정신으로, 그의 성덕을 하나의 원조(元祖)가 되게 하였다. 이와 같이 루아 신부는 개울을 하나의 강으로 만들었다.”

미켈레 루아 시복식 장면(1972년 10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