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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썩어 없어질 창고가 아니라, 영원히 안전한 창고인 하느님의 창고 안에 부(富)를 쌓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10월19일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살다보면 참 특별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청빈을 서원한 수도자에 대한 개념이 없으셔서 그런지, 무리한 요구를 하십니다. 금방 갚아드릴 테니 돈을 좀, 그것도 엄청난 금액을 빌려달라 하십니다.

어떤 분은 때만 되면 골백번도 더 전화하셔서, 그 유명한 족보를 강매하려고 애를 쓰십니다. 벨기에 출신 선교사로 한국에서 활동하시다 돌아가신 구신부님께서는 강권에 못이겨, 결국 구씨 족보 책을 두 권 사기까지 하셨습니다. 백과사전, 전집류, 20부작 다큐멘터리 영상물 등등…

복음선포 활동에 매진하시던 예수님께서도 비슷한 체험을 하셨습니다. 군중 가운데 참으로 특별한 사람이 불쑥 튀어 나오더니 한다는 말!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루카 복음 12장 13절)

참으로 희한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기들 유산 문제를 자기들끼리 해결하지, 왜 정신없이 바쁘신 예수님께 부탁하는지,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무척 당혹해하시고 어이없어 하시며,
세상 웃기는 청을 단호히 거절하셨습니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루카 복음 12장 14절)

예수님께 세상 웃기는 청을 한 그 사람은 아마도 장남인 형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게 유산을 배당 받았는가 봅니다. 너무나 억울했던 나머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공개석상에서 예수님께 청을 드렸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청을 들어주시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웃기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지만, 그가 너무나 재물에 깊이 빠져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의 머릿속은 온통 유산을 적게 배분받은 것에 대한 서운하고 억울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에게 진리나 영원한 생명이나 구원 같은 더 중요한 요소들은 뒷전으로 완전히 밀려나 있습니다. 재물에 대한 생각에 온통 빠져있었기에, 영적인 삶이나 신앙이나 하느님의 존재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오늘 우리 역시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동호회나 취미활동, 만남이나 티비 드라마에는 몇 시간, 몇일이고 투자하지만, 생명과 진리의 말씀으로 가득 찬 성경이나 영성서적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습니다.

보다 본질적이고, 보다 중요하고, 보다 우선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선 잘 먹고 잘 입고, 잘 노는 것이 흠뻑 빠져 있습니다. 재물이 하느님보다 훨씬 우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은 날카롭기만 합니다.
“이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루카 복음 12장 20~21절)

예수님 말씀 하나도 틀린 것 없습니다. 백번 천번 지당한 말씀입니다. 세상 떠나시면서 평생 모은 재산이 들어있는 통장 손에 들고 떠나시는 분, 단 한명도 못봤습니다.

언젠가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날, 우리 모두는 빈손으로 그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때 그분으로부터 호되게 야단맞는 사람들 많은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영원한 안전은 오직 하느님 손길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부(富)는 하느님 앞에서의 부입니다. 그 부는 영적인 부이며 살아생전 나눔과 희생, 봉사와 사랑의 실천을 통해 쌓아올린 부입니다.

그 부야말로 우리의 인생을 영원히 안전하게 지켜줄 것입니다. 썩어없어질 창고가 아니라 영원히 안전한 창고인 하느님의 창고 안에 부를 쌓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