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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무 것에도 놀라지 마십시오.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하느님은 변치 않으십니다.

10월15일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학자 기념일/연중 제28주간 목요일]

쪼끔 힘들 때마다 자동으로 제 입술을 맴도는 노래 하나가 있습니다. ‘아무 것도 너를!’

“어느 것에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아무 것에도 놀라지 마십시오.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하느님은 변치 않으십니다. 인내가 모든 것을 얻게 합니다. 하느님을 모신 사람에게는 부족함이 없으니 하느님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교회는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혹은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학자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관상기도의 최고봉에 오른 사람입니다. 그녀는 자신과 하느님과의 관계를 연인관계로 설정했습니다. 하느님과 비밀스럽게 주고받은 연서(戀書), 연애편지가 바로 그 유명한‘천주자비의 글’입니다.

그녀의 인생에서 깊은 묵상기도와 황홀한 관상생활은 큰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영적생활의 기쁨과 행복, 감미로움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깊은 우물에서 건져 올린 하느님 사랑의 체험을 이웃들과 연결시켰습니다. 백척간두의 위기에 서 있던 수도회와 교회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은 그녀를 용감한 수도회의 개혁가이자 투사로 변모시켰습니다.

우리가 절실히 체험하는 바처럼 인간 존재는 대체로 한결같지 못합니다. 바깥에서는 천사, 법 없이도 살 사람, 성인군자가 따로 없지만 귀가(歸家)즉시 폭군으로 돌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타인으로부터 받는 평가 중에서 가장 정확한 평가이자 신빙성 있는 평가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잘 알고 있는 가족, 이웃, 동료들로부터 받는 평가입니다. 이런 면에서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크게 칭송받을 만합니다.

그녀는 교회 역사 상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대 영성가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매력적인 여성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평가들보다 훨씬 그녀를 돋보이게 하는 평가가 있습니다.

그녀와 동고동락했던 동료 수도자들의 평가입니다. “이토록 거룩하고 신비로운 분, 이토록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성녀를 저희에게 보내주신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영성생활과 관련된 그녀의 가르침은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깊이가 있는지 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렇게 영성생활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바가 없었습니다.

“좋은 벗과 함께 있기를 원하는 것, 하느님과 단둘이 우정을 나누기를 원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성(理性)만으로 그분에 대해 생각하지 마십시오. 많은 개념들도 끄집어내지 마십시오. 대단하고 복잡한 명상도 하지 마십시오. 그분을 바라보는 것 외에 나는 아무것도 청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탁월하고 매력적인 인물이요 성인 가운데서도 대성인인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였지만 자신의 생애 안에 방황하던 청소년기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지난 시절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한때 연애 소설에 심취해서 밤낮없이 많은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또한 외모를 가꾸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예쁜 옷, 값비싼 향수, 화려한 장신구를 구하는데 혈안이 되기도 했습니다. 또래 여자 친구들과 수다 떠느라 하루해가 짧았습니다.”

지금은 만인이 존경하고 흠모하는 대성인께서도 한때 이런 ‘흑역사’가 있었다는 것 오늘 우리에게는 큰 위안꺼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 역시 갈길이 멀지만, 아빌라의 데레사 역시 우리와 똑같은 조건에서, 똑같은 방황과 갈등을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점진적으로 성덕의 길로 나아갔다는 것을 기억하고, 또 다시 힘을 내서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성화의 길을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