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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묵주기도 한번 때릴까요?

10월14일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너희 율법교사들도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견디기 어려운 짐을 남에게 지워 놓고 자기는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지 않는다.”

지난 주일엔 평소보다 약간 일찍 산행을 나섰습니다. 미사를 끝내고 마당에 나와보니 선발된(지난 한 주간 열심히 산) 아이들 열 명이 벌써 봉고차에 빼곡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좋은 자리에 앉겠다고 서로 티격태격 다툰 두 명이 “짤리고” 다른 아이들로 교체되는 실랑이도 있었지만 일단 시동을 걸고 신나는 음악을 크게 틀었습니다.

단골로 다니는 산이 주로 가까운 관악산이나 이웃동네 뒷동산이었는데, 이번 주에는 좀 무리를 했습니다. 김포에서 강화방면으로 가다가 강화대교 건너기 직전에 오른 쪽에 보면 “문수산성”이란 삼림욕장이 있습니다. 바다를 낀 산성인데 주변 경관이 말로 다 표현 못할 정도로 빼어나기에 가을이 더 깊어지기 전에 꼭 한번 가보시기를 적극 추천합니다.

입장료는 없고 얼마 전부터 주차료를 받기 시작했는데, 주차요원들이 얼마나 친절하고 인사성이 밝은지 모릅니다. 한 시간 정도 올라가니 그리 힘들이지 않고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맑은 공기, 서서히 물드는 단풍, 손에 잡힐 듯한 강화도의 전경 등등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세속의 묵은 때가 다 씻기는 듯 했습니다.

아이들 역시 눈앞에 펼쳐진 절경을 내려다보며 다들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다들 산정에서의 성취감을 만끽하고 있는데, 한 아이가 제게 “신부님, 정상에 올라왔는데, 단체로 묵주기도 한번 때려요!”라고 말했습니다. 요즘 우리 아이들 사이에 묵주기도가 유행이거든요. 그 순간 제 머리 속이 갑자기 바빠지면서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럴까? 좋은 생각이기는 한데… 그런데 여기 정상에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좀 어색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의아한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지 않을까? 그런데 오늘 이 녀석들이 왠 일로 이렇게 오바들을 한다냐?”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엉겁결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애들아, 아이디어는 좋은 아이디언데… 여기 다른 등산객들도 많이 계시니 묵주기도는 나중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 드리도록 하자.”
저도 모르게 그 말을 던져놓고 나서 하산 길 제 발걸음이 참으로 무거워졌습니다. 왜냐하면 기회 있을 때마다 틈만 나면 아이들에게 신자들에게 제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증거하는 삶을 사십시오. 신자임을 떳떳하게 밝히며 사십시오. 기도하는 신앙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십시오. 공공장소에서 자랑스럽게 성호도 긋고 묵주기도도 열심히 바치십시오.”

그렇게 외쳐놓고는 “하느님이 가까운 곳, 산꼭대기에 올라왔으니 묵주기도 한번 때리자”는 아이들을 만류했던 제 모습이 참으로 부끄러워졌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을 혹독하게 몰아 부치십니다.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다 민족 안에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여러 부류의 집단 가운데 가장 순수한 혈통을 자랑하던 유다인들 가운데 유다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 시대 당시 6,000여명 정도의 수효를 유지하던 엘리트 가운데 엘리트들이었습니다. 한편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 질책의 단골 대상이었지만 다들 정통 유다인들이었습니다. 율법에 지극히 충실했던 정예 유다교인들이었습니다. 기도생활에 하루의 많은 부분을 할애했고, 기도도 실제로 열심히 바쳤던 훌륭한 신앙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 치명적인 결핍요소가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신앙을 삶으로 보여주지 못함”이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신앙, 열렬한 기도 생활, 하느님 공경, 이웃사랑의 실천 등은 주로 신체 윗부분(입술, 귀, 머리, 생각)만을 사용했던 지극히 비정상적인 것들이었습니다. 기도와 신앙을 가슴과 몸으로, 손과 발로 보여주지 못한 것, 그것이 그들의 가장 결정적인 흠이었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