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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예수님의 자유로움은 하느님 아버지께 온전히 종속됨을 통한 자유로움이었습니다!


10월12일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공생활 기간 내내 예수님께서 일관되게 보여주신 특징적인 모습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추구하는 세속적 권세나 명예는 거들떠보지도 않으셨습니다. 헤로데나 로마 총독, 최고 의회, 대사제 등 지상 권세 앞에서 조금도 주눅들지 않으셨으며, 할 말 안 할 말 다 하셨습니다. 세속적인 야심이나 권력욕으로부터의 자유로움 때문이었습니다.

마치 한 줄기 바람 같으셨던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그토록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혈연이나, 학연, 지연을 헌신짝처럼 차버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정들었던 고향 나자렛을 포함해서, 즐겨찾으셨던 제2의 고향 카파르나움이라 할지라도, 결코 안주하거나 정착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을 향해 지체없이 떠나고 또 떠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유다 지도층 인사들이 목숨처럼 소중히 여겼던 율법으로부터, 제사 규정으로부터, 안식일 규정으로부터, 정결례로부터, 성전으로부터, 재물로부터 철저하게 자유로우셨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습관처럼 어제와 결별하고, 즉시 자리를 털고 일어나, 홀연히 또 다른 여행길을 재촉하시는 예수님의 뒷모습이 참으로 멋있어 보입니다. 좀 더 머물러 달라는 사람들의 요구 앞에 예수님께서는 얄짤 없으셨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는 또 다른 고을로 떠나가셨습니다.

그 모든 예수님의 자유로움의 원천이자 배경이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철저하게도 하느님 아버지께 매여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뜻, 내 의지, 내 계획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아버지의 뜻만을 추구했습니다. 그저 아버지의 의중에 순명했습니다.

그저 아버지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당신 삶속에서 실천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세속의 권력이 들이대는 협박이나 강요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갖은 유혹과 달콤함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대자유의 원천이신 하느님 아버지께 온전히 종속됨을 통해 참 자유를 얻으신 예수님이십니다. 우리 역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바라봐야겠습니다. 그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음으로 인한 자유가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께 100퍼센트 종속됨으로 인한 자유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인이기를 갈구합니다. 동료 인간 존재로부터의 자유, 관계로부터의 자유, 나 자신으로부터의 자유, 죄나 유혹으로부터의 자유, 재산이나 명예로부터의 자유…

그러나 현실은 어디 그런가요?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더 얽매이고, 더 짓눌리고, 더 종속되어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건네시는 바오로 사도의 권고 말씀이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갈라티아서 5장 1절)

오늘 우리를 억압하는 것을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를 부자유스럽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입니까? 자유로움의 모델로서, 오늘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고, 해방시켜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의 은총 안에 좀 더 자유로운 오늘 하루를 만끽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