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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부디 너무 쓸쓸하게 보내지 마시길

10월1일 [연중 제26주간 목요일]

“이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 네 영혼이 너에게서 떠나가리라.”

또 다시 추석입니다. 이번 연휴는 고향에 못 가시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언제나 쓸쓸히 홀로 명절을 맞이하는 분들도 많으시겠지요.

부디 너무 쓸쓸하게 보내지 마시길, 지나치게 신세한탄 하며 보내지 마시길 기도드립니다.

저희 아이들 가운데도 가족, 친지들과 함께 명절을 한 번 보내는 것이 소원인 아이들이 여럿 있는데, 그 간절한 소원 한번 들어주지 않는군요.

어려운 사정을 알지만 “죄송하지만 이번 추석에는 제발 보내지 말아 달라”는 말을 듣고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러려니 하라”
“우리와 함께 재미있게 지내자”며 어깨를 두드려주지만 너무나 화가 납니다.

‘왜 명절 같은 것을 만들어가지고 우리 아이들 마음 아프게 하나’ 원망도 됩니다. 집에 못가서 마음 아픈 아이들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해 줄 수 있을까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우리 수사님들이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손에 쥔 것이 별로 없는 수도자들, 늘 받기만 하는 저희가 이웃과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나눔이 무엇인가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시대를 잘못타고 난 아이들, 부모 잘 못 만나 고생 많은 우리 아이들, 어린 시절부터 갖은 고생을 다해온 불쌍한 아이들, 그 아이들을 친 자식처럼 여기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선물로 여기고, 그 아이들의 인간성 회복을 위해 헌신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저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나눔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추석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이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 친지들 가운데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걸맞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관대한 나눔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또한 나누지 않고 베풀지 않는 부자를 향해 엄중하게 경고하고 계십니다.

사실 재물이라는 것은 우리 삶에 있어서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은 우리 삶을 불편하게 만들고, 우리를 의기소침하게 하고 비참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부여하신 능력과 달란트를 바탕으로 최선을 다해 정직하고 깨끗하게 부(富)를 축척할 필요가 있습니다. 재산이 어느 정도 있어야 봉사활동도 할 수 있고 인간다운 품위를 유지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재물에 대한 과도한 욕심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전 생애를 오직 재산 축척에만 몰두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전노처럼 돈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재물을 하느님의 위치에 올려놓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 또 다른 형태의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재물은 때로 마약과도 같아서 우리 인간의 오관 기능을 마비시키고 판단 능력을 파괴시킵니다. 그래서 결국 재물은 우리를 거룩함의 근원이신 하느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장해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세속을 가장 잘 대표하는 재물이 우리 영혼에 끼치는 이런 악영향을 잘 파악하고 계셨던 예수님이셨기에 재물을 지혜롭게 잘 사용할 것을 강하게 요청하고 계십니다.

“이 어리석은 자야, 바로 오늘 밤 네 영혼이 너에게서 떠나가리라. 그러니 네가 쌓아 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사실 얼마만큼의 세월이 흐르고 나면 우리의 생애는 덧없이 시들고, 우리는 무대 뒤로 사라져야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때 우리가 모아두었던 재산은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그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가 쌓아온 재물이 아니라 우리가 이웃과 세상, 하느님 나라를 위해 봉헌했던 나눔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행하고 있는 소리 없는 나눔 그것은 하느님께서 가장 기쁘게 받으실 봉헌인 것입니다.

매일 우리가 그토록 중요시 여기는 우리의 재물에 죽고, 목숨처럼 중요시 여기는 자존심에 죽고, 나만의 영역에 죽고, 내 울타리에 죽을 때, 우리의 마지막 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잘 왔노라’하시며 우리를 환영하실 것입니다.

누구나가 다 고상한 죽음, 남 보기에 민망하지 않은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 합니다. 더 나아가서 고귀한 죽음, 향기로운 죽음, 이웃들의 뇌리에 강한 긍정적인 각인을 하는 죽음을 맞이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그런 죽음은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에게 거저 주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매일 부단히 죽는 사람들, 매일 자아포기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는 사람들, 부단히 자기 혁신을 위한 아픔을 기꺼이 감수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