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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삭디 삭은 봉고 트럭

9월12일 [연중 제23주간 토요일]

루카 6장 43-49절
“그러나 내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기초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언젠가 이사를 가시면서 “쓸 만한 것들이 꽤 있다”는 한 고마우신 형제님의 말씀에 트럭을 몰고 댁으로 향했습니다.

다들 삐까번쩍한 대형 자가용들만 줄지어선 주차장에 삭디 삭은 1톤 짜리 봉고트럭을 몰고 들어가니 관리하는 아저씨의 위세가 대단했습니다.

처음 들어갈 때부터 “삭은 트럭이 감히 어딜 들어오냐?”는 표정이었는데, 양해를 구하는 과정에서 초면인데도 불구하고 아예 반말에다, 바라다보는 눈빛이 얼마나 깔보는 듯한 눈빛이었는지…

너무나 속이 상했던 저는 직접 아저씨 면전에서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짐을 트럭에 실으면서 “그 아저씨, 얼굴도 되게 웃기게 생겨 먹어 가지고 엄청 딱딱거리네?” 하며 괜히 혼자서 투덜거렸습니다.

짐을 싣고 돌아오는데, 기분이 정말 영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추스르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보시면 그 사람이나 나나 거기서 거기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저 역시 지난 세월, 사람들과의 만남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과오를 범해왔었는가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면이나 의도를 파악하려는 노력은 뒷전인 채 단지 외모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면서 작고 약한 사람들을
얼마나 마음속으로 무시해왔는지 모릅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이 복음의 길이며 우리 교회와 수도회가 나아가야 할 길이란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실제 삶 안에서는 전혀 그러하지 못했음을 반성합니다.

공동체 안에서도 약하고 병든 사람들을 은연중에 얼마나 자주 무시해왔었는지?
부족하고 덜떨어진 아이들이 가장 우선적인 사랑의 대상임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행동이 따라주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안 그래도 교회의 이중적인 모습, 차별대우에 실망하고 상처받은 가난한 형제자매들을 마음으로 환대하고 다독여야함을 이론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상황 앞에서는 전혀 다르게 행동해 왔음을 뉘우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기초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고 말씀하시면서 행동하는 신앙인이 될 것을 강하게 요청하고 계십니다.

오늘 하루, 살아있는 신앙인, 말씀에 따라 사는 신앙인, 행동하는 신앙인, 일어서는 신앙인, 세상의 혁신을 위해서 과감히 투신하는 신앙인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